[스타, 명예의 전당①] 정우성 “가난·중퇴·방황…사춘기 절망의 늪에서도 늘 꿈을 꿨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2월 15일 06시 57분


배우 정우성은 평범한 일상의 자유를 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일이 전부”인 삶에서 공허함을 달랜다. “일을 통해 무언가를 또 꿈꿀 수 있게 됐다”는 그는 평소 느끼기 어려운 “날아갈 것 같은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촬영현장에서 얻는다고 했다. 사진제공|NEW
배우 정우성은 평범한 일상의 자유를 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일이 전부”인 삶에서 공허함을 달랜다. “일을 통해 무언가를 또 꿈꿀 수 있게 됐다”는 그는 평소 느끼기 어려운 “날아갈 것 같은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촬영현장에서 얻는다고 했다. 사진제공|NEW
워낙 가난해서 집에 있기가 힘들었다
중3때 재수생이라 속이고 알바하기도
혼자 모델 일 찾으며 꿈에 조금씩 다가가
배우의 삶…쉼 없이 달리다보니 벌써 40대
현실 속 멜로는 갈수록 어려워지네요

14일 개봉한 영화 ‘강철비’는 배우 정우성(44)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터이다. 북한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핵전쟁 위기에 놓이는 한반도의 긴박한 상황을 그린 영화를 통해 정우성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의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눈은 더욱 깊어졌고, 몸은 더욱 날렵해졌다. 깊어진 눈으로는 세상 속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운명에 맞닥뜨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날렵해진 몸으로는 그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액션의 호쾌함으로 색다른 무대를 펼쳐놓고 있다.

그러기까지 지나온 시간은 오로지 꿈으로 가득했다. 청춘의 방황 속에서도 결코 꿈을 잃지 않았다는 그는 그래서 그에 관해서는 한 치의 타협과 양보도 없는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 치열함이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었음을 또 그만한 꿈으로 가득했던 지나온 시간이 읽게 해준다.

# 방황…, 청춘…, 그리고 꿈


고등학교 1학년생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함께 진학한 친구는 일찌감치 학교를 박차고 나갔다. 선배들과 엮인 모종의 사건 때문이었다. 친구도 없는 학교에 영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난 친구는 퍼머를 했고, 청재킷을 입고 있었다. 친구를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달랬다.

학교를 졸업하면 은행원으로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접었다. 선배들의 호출과 시비는 계속됐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나날들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어김없이 불려갔다. 이번엔 밴드부였다. ‘줄빠따’를 맞으려던 찰나, 점심시간을 종료하는 벨이 울렸다. 선배들은 수업이 모두 끝나면 남으라고 했다. 종례시간, 부담임교사인 장교 출신의 교생에게 일러 바쳤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선배들로부터 불려 다닐 일은 없었다. 학교를 스스로 관뒀기 때문이었다.

그 1년 전, 중3 때부터 워낙 큰 키 덕분(?)에 재수생으로 위장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를 뛰쳐나왔지만 아르바이트는 그래서 익숙한 일이었다. 모델센터를 다니며 에이전시를 드나들었다. 모델의 일을 시작한 것이다. 한 저가 의류브랜드의 모델을 하면서 그럴 듯하게 인쇄된 화보의 힘을 얻어 크고 작은 무대와 매장 쇼 등에도 섰다. 아직 어린 나이에 정기적인 수입을 얻게 됐다.

그러는 사이 지상파 방송사의 탤런트 공채 시험에도 응시했다. 하지만 번번이 낙방의 쓴맛을 봐야 했다. 그것도 서류전형에서. 고교 중퇴의 학력은 절대로 깨부술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와 연기자로서 꿈을 되레 무너뜨렸다.

그래도 절망할 것은 아니었다. 절망과 방황에 단련된 까닭이었을까.

“집안이 워낙 가난하다보니 사춘기 시절엔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밖으로 나돌았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도 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걸 찾아가는 거였다. 친구들과 꿈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 같다.”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NEW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NEW

-무엇을 꿈꿨나.

“구체적인 무언가를 꿈꾸고, 또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되어야, 되어야, 그렇게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과 부딪치며 내 것을 찾아가야 했다. 얼마나 많은 것이 걸러지지 않은 채 내게 다가왔겠나.”

-그것이 배우였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꿈을 꾸기는 했다.”

-결국 오랜 시간 함께 일하게 될 매니저를 만났다.

“주변에 카페를 운영하는 선배들이 몇 명 있었다. 카페에 놀러가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일을 돕기도 했다. 매니저는 아는 선배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됐다. 선배가 소개했다. 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선배는 ‘가수 해볼래?’라고 물으며 매니저를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만나 향한 곳은 노래방이었다. 노래 ‘오디션’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노래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사실은 배우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결국 함께 일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 8개월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 사이 이런저런 TV 예능프로그램에 패널로 잠시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 “에너지와 책임감은 새롭게 꾸는 꿈”

그런 기다림 끝에 기회가 찾아왔다. 1994년 데뷔작인 영화 ‘구미호’ 오디션에 응했다. 비로소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이처럼 지나간 시간에 얽힌 솔직한 추억을 디딤돌 삼아 정우성에게 이제 일은 “삶의 대부분”이 됐다.

“내 삶을 이루는 건 일이다. 일을 통해 무언가를 또 꿈꿀 수 있게 됐다. 배우를 하면서 영화를 꿈꾼다. 영화에 관한 생각도 (다른 이들과)나눌 수 있게도 됐다. 일이 삶의 대부분이다.”

-워커홀릭인가.

“하하! 워커홀릭? 흠…, 그런 것 같다. 하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배우로 일해 오면서 잃은 건 뭘까.

“자연인 정우성에게는 익명성이 없다. 일상의 자유로움은 익명성에서 오는 것인데, 내게는 그게 없다. 거리를 혼자 걷거나 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먹거나 할 수 없다. 함께 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할 때가 있는데 말이다. 허허!”

-혼자 먹을 게 아니라 이제는 옆에서 매일 함께 먹을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현실의 멜로 말이다.

“하하! 나이를 먹을수록, 40대 중반으로 향해가면서 이제는 그게 숙제처럼 어려워지고 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영원한 청춘일 것 같은데.

“40대가 되면서 열정이 사라지는 느낌도 있다. 내가 지금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 순간 번뜩하고 그 열정을 되찾게 될 거다.”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NEW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NEW

말은 그렇지만 정작 그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충분하다. 정우성은 배우뿐 아니라 동료 이정재와 함께 매니지먼트사(아티스트컴퍼니)를 이끄는 기획자이자 제작자로서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미 연출 데뷔하기도 한 감독으로서 내후년에는 본격적인 장편 상업영화 연출작을 내놓을 생각이다. 또 4년여 동안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외면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일은 또 그만한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 같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나눠주고 있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진 것이기도 하다. 하하! 하지만 모두 내가 하는 일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말이다.”

-배우로 매니지먼트사를 이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배우가 되고 스타가 됐을 때 현장에서 동료들을 대하는 자세를 잘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공동작업자로서 책임감을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걸 알고 현장에 가면 그 나름의 재미가 엄청 커진다. 바로 그런 경험치를 후배 연기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오랜 친구인 (이)정재 씨와 긴 시간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같이 했다. 더 나이가 들면 못할 것 같았다. 사업적 수완이 있든, 없든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수지는 맞나?

“수지? 하하! 아직은 그렇다. 그러니 나도 열일(열심히 일한다)하는 거 아닌가. 하하!

● 정우성

▲ 1973년 3월20일생
▲ 1989년 경기상고 1학년 중퇴
▲ 1991년 모델 활동 시작
▲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
▲ 1996년 영화 ‘본 투 킬’ 등
▲ 1997년 영화 ‘비트’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
▲ 1998년 이후 ‘태양은 없다’ ‘유령’ ‘무사’ ‘똥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중천’ 등
▲ 2009년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아시안필름어워드 남우조연상
▲ 2013년 이후 ‘감시자들’ ‘나를 잊지 말아요’ 등
▲ 2016년 ‘아수라’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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