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현실 탓인가… 극장에서 ‘사랑’이 사라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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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터널 빠진 한국 멜로영화

멜로 영화는 전도연, 손예진, 김하늘, 수지 등 여배우들이 인지도를 높이고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7년 이후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 대표적인 멜로 영화. 위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접속’ ‘클래식’ ‘건축학개론’ 속 한 장면. 각 영화사 제공
멜로 영화는 전도연, 손예진, 김하늘, 수지 등 여배우들이 인지도를 높이고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7년 이후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 대표적인 멜로 영화. 위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접속’ ‘클래식’ ‘건축학개론’ 속 한 장면. 각 영화사 제공
극장가에서 사랑이 사라졌다.

좀처럼 사랑을 다룬 멜로 영화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난해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 50위권에 든 영화 중 ‘멜로 로맨스’ 장르는 할리우드 영화 ‘라라랜드’(29위)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뮤지컬 영화로 정통 멜로와는 거리가 멀다. 한때 국내에서 멜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틈새시장을 파고들 수 있는 장르, 한국인의 감정에 호소하는 인기 상품으로 사랑받았지만, 이제는 쇠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 멜로 부흥기에서 쇠퇴기로

국내에서 ‘멜로 부흥기’를 이끈 영화는 올해로 개봉 20주년을 맞은 ‘접속’(1997년)이다. 이전 멜로 영화들과 달리 PC통신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접목해 당시 67만 명의 관객을 끌며 그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멜로 영화로선 드문 상업적 성공이었다. 그해의 영화진흥위원회 연감은 “접속의 대히트는 한국영화 흐름을 멜로드라마로 틀게 했다”며 “멜로드라마가 97년 한국영화계의 흐름을 주도했다”고 흥행의 의미를 분석했다.

‘접속’을 시작으로 극장가에는 멜로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1997년 ‘편지’,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 2000년 ‘동감’, 2003년 ‘클래식’ 등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들은 배우 전도연 김하늘 손예진 등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여배우들이 인지도를 높였다.

팍팍한 현실 탓일까. 이후 멜로 영화는 맥을 못 추는 모양새다. 최근 10년간 국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든 멜로 영화는 2012년 ‘늑대소년’(4위) 한 편에 불과하다. 2012년엔 ‘늑대소년’ 외에도 ‘건축학개론’(11위)이 411만 관객을 끌며 흥행하는 등 반짝 붐이 일었지만, 역시 그 뒤로는 10위권에 든 멜로 영화가 없다.

범주를 넓혀 박스오피스 상위 50위권에 든 영화를 살펴봐도 정통 멜로 영화가 줄어드는 추세는 뚜렷하다. 2006년 3편의 정통 멜로 영화가 순위권에 진입했지만 2009년 1편, 2013년 2편, 2015년 1편으로 점차 극장가에서 만나기 힘든 ‘귀한’ 존재가 됐다. 관객 300만 명 이상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3편(늑대소년, 건축학개론, 비긴 어게인)에 불과하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멜로는 모든 영화 장르의 기초를 형성한다”며 “남녀 배우들이 배우로서의 매력을 뽐내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라는 점에서도 멜로 장르의 하락세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 “사랑은 멀고 먼 남의 얘기”

멜로 영화의 주요 타깃은 20, 30대 젊은 관객이다. ‘접속’과 ‘건축학 개론’을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현장에서 느끼기에도 멜로에 대한 수요가 확 줄어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5포 세대’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까지 기피하는 현실에서 여유롭게 남의 사랑 얘기를 볼 만큼 한가롭지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답답한 현실 탓에 ‘고구마’ 같은 멜로 영화보다는 차라리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오락 영화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TV에서 이른바 ‘웰 메이드’ 멜로드라마가 속속 등장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국내 한 배급사 관계자는 “지상파뿐 아니라 케이블 채널, 최근엔 웹드라마까지 등장해 다양한 소재의 멜로물을 만들어낸다. 다른 채널과의 싸움에서 밀렸다는 것도 극장가 멜로 영화의 실종 이유”라고 했다.

국내에서 멜로 장르에 대한 제작과 투자가 줄어드는 만큼 요즘 극장가에선 과거 흥행했던 멜로 영화를 재개봉하기도 한다. 영진위의 2013∼2016년 ‘재개봉 영화 관객 수’ 통계를 살펴봐도 ‘이터널 선샤인’(31만 명·2005년), ‘노트북’(18만 명·2004년) 등 멜로 영화가 상위권에 올랐다.

영화시장분석가 김형호 씨는 “재개봉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국내 관객들의 멜로 영화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라며 “기성세대의 시각이 아닌 주소비층인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 발굴에 힘쓴다면 또다시 멜로 부흥기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고 강조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멜로영화#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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