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음악이 흐르는 몽환적 영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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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트럼페터와 함께 본 재즈 영화 ‘본 투 비 블루’]
전설적 트럼페터 쳇 베이커 삶 그려 연기 빼어났지만 연주는 ‘엉터리’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재즈 트럼페터 쳇 베이커의 삶을 그린 ‘본 투 비 블루’. 이선 호크의 대역 연주자가 들려주는 선율이 실제 베이커의 연주와 흡사하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재즈 트럼페터 쳇 베이커의 삶을 그린 ‘본 투 비 블루’. 이선 호크의 대역 연주자가 들려주는 선율이 실제 베이커의 연주와 흡사하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거장의 삶에 설탕을 치고 예쁜 물감을 뿌리면 이런 작품이 나온다.

음악영화 ‘본 투 비 블루’(9일 개봉)는 인스타그램 세대를 위한 쳇 베이커(1929∼1988) 영화다. 연출자 로베르 뷔드로는 베이커의 삶을 다루되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듯 접근했다. 사실을 자르고 미화해 적당히 예쁘장한 ‘로맨스-고난극복-음악’ 영화를 만들어 97분짜리 액자에 넣었다.

때는 1966년. 미국 서해안 재즈의 대부,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트럼페터 겸 보컬 쳇 베이커(이선 호크)는 심각한 약물 중독으로 감방에 들어갔다 나온 뒤 재기를 꿈꾼다. 그는 자신의 전기영화에서 상대역을 맡은 제인(카먼 이조고)과 사랑에 빠지지만 폭력배의 습격을 받아 앞니가 왕창 빠져 트럼펫 연주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데….

쳇 베이커 평전의 한국판(2007년 출간) 제목은 ‘쳇 베이커(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다. 그의 삶은 시궁창이었다. 약을 구하려 동료를 등치고 자기 아내에게 매춘도 권유한 악질 마약 중독자. 가족과 친지를 내팽개치고 약물과 환락에 투신한 난봉꾼. 그런 삶에서 뽑혀 나온 그림 같은 연주, 달콤한 노래는 늪에 핀 연꽃 같았고, 그를 재즈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만들었다.

영화의 영상과 음악이 모두 아름답다. 베이커가 고향의 전원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장면은 꿈결 같다. 영화 속 영화를 흑백으로 표현해 바깥 액자 이야기의 컬러 화면과 병치시킨 연출은 감각적이다. 몽환적인 색감과 구도는 베이커의 명반 ‘Sings’ ‘Chet Baker&Crew’ ‘Chet’의 표지를 참고한 듯하다.

하지만 베이커의 삶을 잘 아는 재즈 팬이라면 너무 달다며 고개 젓기 쉽다. 재즈 스탠더드와 신곡이 영상을 메울 뿐 정작 베이커가 작곡한 노래는 등장하지 않는다. 베이커의 전매특허인 ‘My Funny Valentine’은 그렇다 쳐도 ‘Over the Rainbow’ ‘Let‘s Get Lost’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를 중심에 둔 레퍼토리, 즉흥연주가 대폭 생략된 음악이 겨냥한 과녁은 로맨스 영화로 보인다.

이마 주름까지 연기학원에 등록시킨 듯한 호크의 열연은 빼어나다. 약물 중독과 잇몸 통증을 이기고 미국 뉴욕의 유명 클럽 ‘버드랜드’에 오르기 위해 분투하는 나약하며 강인한 이의 초상을 호크는 자신인 양 소화해냈다.

8개월이나 트럼펫을 배웠다는 호크의 연주는 어떨까. 기자와 함께 영화를 본 트럼페터 오재철 씨(오재철라지앙상블)는 공들여 분 듯한 호크의 연주가 실은 엉터리였다고 했다. 오 씨는 “욕조에서 피를 토하며 몇 음을 불어내는 딱 한 장면을 빼곤 모든 연주에서 호크의 손가락 모양과 나오는 음이 딴판”이라면서 “다만 대역 연주자(케빈 터코트)는 쳇 베이커를 일찍이 파고든 사람으로 보인다. 섬세한 텅잉(tonguing·관악기를 불 때 혀끝으로 소리를 끊는 연주법)까지 베이커의 미묘한 연주 특색을 잘 살려냈다”고 했다. 호크의 연기가 그만큼 빼어났다는 방증도 된다.

꽤나 감동적이고 상당히 예쁜 영화다. ‘팩션’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본 투 비 블루#트럼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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