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오디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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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프로, 배신-음모-독설 난무… 악마 편집까지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지며 경쟁 방식이 점점 가혹해지고 있다. 엠넷의 ‘언프리티 랩스타’([1])는 출연자들이 두 명의 출연자에게 상대를 비하하는 ‘디스전’을 벌이도록 부추겼고 ‘쇼미더머니4’([2])는 일대일 배틀에 나선 출연자가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 10대 소녀들이 출연한 ‘식스틴’([3])도 잔인한 진행 방식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방송화면 캡처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지며 경쟁 방식이 점점 가혹해지고 있다. 엠넷의 ‘언프리티 랩스타’([1])는 출연자들이 두 명의 출연자에게 상대를 비하하는 ‘디스전’을 벌이도록 부추겼고 ‘쇼미더머니4’([2])는 일대일 배틀에 나선 출연자가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 10대 소녀들이 출연한 ‘식스틴’([3])도 잔인한 진행 방식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방송화면 캡처
“쟁쟁한 래퍼들과의 경쟁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 선택과 가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다.”(아이돌 그룹 ‘위너(WINNER)’의 송민호)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여성 비하 랩으로 비판을 받은 송민호가 최근 위너 공식 페이스북에서 사과했다. 특히 이 랩 가사를 여과 없이 방영한 엠넷의 오디션 프로 ‘쇼미더머니4’에 대해선 21일 열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희철 방심위 방송연예팀장은 “힙합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해도 제작진이 무리하게 경쟁을 유발하고 사전 심의에 소홀한 것은 문제”라며 “앞서 두 번의 중징계를 받았는데도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어 과징금 처분 같은 최고 수준의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쇼미더머니3’도 방심위로부터 비속어를 남발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 중지와 관계자 징계 등 중징계를 받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참가자들을 가혹한 경쟁의 링으로 몰아넣는 서바이벌·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9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가 인기를 끌며 방송가에서는 음악, 게임, 춤, 연기, 요리 등 다양한 소재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위너TV’, ‘식스틴(SIXTEEN)’ 등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직접 뽑는 실전 오디션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시청률을 잡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자 오디션의 룰 또한 독해지고 있다. 특히 이기기 위한 각종 음모와 배신, 출연자들의 상대 깎아내리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3월 종영한 엠넷의 ‘언프리티 랩스타’에서는 진행자들이 참가자 타이미와 졸리브이를 ‘디스전 배틀’을 벌이도록 부추겨 논란이 됐다. 타이미는 상대를 향해 “똥 같은 존재” “바퀴벌레, 기어 다녀야 너답지” 등 외모 비하 발언을 퍼부었고 졸리브이는 상대를 성적으로 헤픈 여자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MBC뮤직의 오디션 프로 ‘슈퍼 아이돌’을 연출한 권영찬 프로듀서는 “쏟아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상벌을 확실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외국 오디션 프로그램들처럼 하나의 추세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오디션 프로 붐을 일으킨 ‘슈퍼스타 K’도 이번 시즌7부터 일대일 대결에서 서바이벌 요소를 강화해 8월 첫 방송을 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런 오디션 프로 참가자의 대다수가 10, 20대라는 점이다. JYP의 새로운 걸그룹 멤버를 뽑는 엠넷의 오디션 프로 ‘식스틴’은 심사위원인 박진영 씨가 기자간담회에서 “아이들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학부모를 만나 일일이 상의한 뒤 출연시켰다”고 밝혔지만 결국 공정하지 못한 심사 방식과 잔인함으로 비난을 받았다. 이 프로는 참가자들을 일종의 우열반인 메이저팀과 마이너팀으로 갈라 대결을 펼친 데 이어 최종 멤버를 선발하는 마지막 회에서 기존 룰을 번복해 중간 탈락자가 최종 합격했다. 특히 최종 합격자에게 탈락자를 발표하도록 시켜 “잔인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디션 시스템에서 경쟁은 상대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하며 이것이 사라지면 경쟁이 아닌 싸움이 된다”며 “주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편집을 반복하고 출연자 간에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면 오디션 프로의 기본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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