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나면 ‘밥 생각’이 모락모락 나는 뮤지컬 ‘밥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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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7월 31일 14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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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하 ‘밥퍼’)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는 “종교극내지는 한 목사의 신앙고백 일대기쯤 될 것”이라는 시선에 있다.
청량리역 광장과 쌍굴다리 아래에서 라면과 밥을 노숙자, 무의탁노인들에게 나누어 주다 다일공동체를 세운 최일도 목사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도 이 작품의 지향점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뮤지컬 ‘밥퍼’는 종교극도 목사의 신앙고백 이야기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밥퍼’는 시인과 밥 퍼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상하는 지향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굳이 드러내지도 않았다.

1막은 목사가 되기 전 전도사 신분이었던 최일도와 수녀인 시인 김연수의 사랑 이야기로 채워진다. 최일도 전도사(강필석 분)와 로즈수녀 김연수(강성연 분)의 애틋하지만 통속적인 스토리가 마음 한 구석에 제대로 날아와 꽂히는 것은 역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의 힘’일 것이다. 사실은 언제나 드라마보다 강하니까.

2막은 청량리 사창가에서 거지, 노숙자, 무의탁 노인들에게 밥과 김치를 퍼주는 최일도·김연수 부부의 기쁨과 시련의 이야기를 담았다. 거지대장 ‘거장’과 몸 파는 여인 ‘향숙’의 캐릭터가 극의 절반을 이끈다.

‘밥퍼’의 연출자 이진숙씨는 “최일도의 ‘밥’이라는 나눔의 시발점이 주변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그 ‘나눔’의 시너지에 대한 결과들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그 과정에서 ‘밥’이 ‘꿈’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냈다”고 설명했다.

● 강필석·김연수, 애틋하고 애잔한 ‘목사 수녀커플’ 눈길

‘밥퍼’는 최일도 목사가 쓴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 원작이다. 서울시뮤지컬단(단장 유인택)의 작품으로 작년 12월에 초연됐다가 일부 수정을 거쳐 요즘 재공연 중이다. 8월 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를 떠나 애틋하고 애잔한 최일도와 김연수의 러브 스토리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배우들 사이에서 속칭 ‘노래도 연기도 다 잘 되는 배우’ 강필석은 극중 대사인 “한번 했다하면 한길로만 가서 이름이 ‘일도’”라는 우직하고 뚝심있는 최일도 목사의 캐릭터를 명쾌하게 드러냈다. 모처럼 만나는, 한 점 의심이 없는 시원시원한 캐릭터 해석이다.

‘김연수’ 역의 강성연은 은근히 놀랐다. 원래 발음과 목소리 톤이 좋은 연기자이기도 하지만 강성연의 대사는 미세한 감정의 떨림까지 세종문화회관 구석구석까지 전해졌다.
2000년대 초반 ‘보보’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했던 강성연은 노래도 전문 뮤지컬배우 못지않게 뛰어났다.

‘밥퍼’의 넘버들은 대체적으로 편하게 들리고 쉽게 이해된다. ‘나는야 최일도’, ‘어찌해야할까’, ‘청량리 파라다이스’ 등이 대표적인 곡들.
‘사람보다 더 예쁜 건 세상에 없네/사람보다 더 향기로운 것은 없네/사람이 준 상처 사람으로 위로받네/사람이 준 슬픔은 사람이 치유하네’하는 가사의 넘버 ‘어제는 비 오늘은 햇살’도 좋다.

세 명의 거지가 “죽으면 개값, 개값이지”하며 자조적으로 부르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밥퍼’ 넘버들 중 가장 흥쾌한 리듬과 안무를 갖춘 ‘죽으면 개값’도 귀를 열고 감상해 보시길.

묘하게도 보고나면 배가 고파지는 공연이다.
특히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하얀 쌀밥 한 수저에 김치 한 조각 얹어, 느긋하게 밥 한 그릇 먹고 싶어지는 공연.

앞치마를 걸친 최일도 목사가 창녀 ‘향숙’에게 밥주걱을 흔들며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밥심으로 사는 거야. 뱃속이 든든하면, 거기가 천국이니까.”
묘하게 잊혀지지 않는다. 울림이 있으니까.

양형모 기자 ranbi361@donga.com 트위터 @ranbi361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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