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고효율 매력… 일드 원작극 안방 차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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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에 늘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무채색 치마 정장을 입고 다니는 여교사는 ‘마녀’를 닮았다. 말투는 건조하고 눈빛은 서늘하다. 새 학년 첫날 쪽지시험 성적순으로 자리를 정한 그는 항의하는 아이들에게 “낙오자가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사회규칙”이라고 말한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단조의 음악이 흐른다.

12일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여왕의 교실’은 독특한 캐릭터의 교사 마여진(고현정)과 6학년 3반 아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드라마의 주제는 치열한 입시경쟁과 치맛바람, 왕따 등 교육문제. 흔한 삼각관계나 출생의 비밀, 꽃미남 주인공도 없다.

‘여왕의 교실’은 지난달 종영한 KBS ‘직장의 신’을 떠올리게 한다. 식품회사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슈퍼우먼 계약직 ‘미스김’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다뤘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일본드라마(일드)가 원작이다. ‘여왕의 교실’은 동명의 드라마(2005년)를, ‘직장의 신’은 ‘파견의 품격-만능사원 오오마에’(2007년)를 리메이크했다. 올해 초 방영된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2002년)이 원작이다. 올해 상반기 지상파 3사가 모두 일드 원작 드라마를 내보낸 셈이다.

일드 리메이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봄날’(2005년) ‘하얀 거탑’(2007년) ‘꽃보다 남자’(2009년) 등이 일드 원작 드라마들이다. 최근에는 그 수가 늘었다.

일드 리메이크가 늘어나는 데에는 일드의 다양한 소재, 양국 문화의 유사성, 치열해진 시청률 경쟁이 한몫했다. 주창윤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교수는 “2000년대 이후 드라마 제작비가 급격히 올랐지만 시청률을 보장하기 어려운 데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진 상황”이라며 “인기 일드 리메이크는 국내에서도 통할 가능성이 크고 스타 작가를 쓰지 않아도 되므로 제작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국의 한 CP도 “새로운 소재를 갈구하면서도 신인 작가의 작품일 경우 위험성 때문에 편성을 주저한다. 반면 일본 인기 원작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한다”고 말했다. 일드 리메이크 드라마는 일본 시청자들에게 익숙해 되팔기에도 유리하다. 한국판 ‘그 겨울…’은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일본에 선판매됐고, ‘직장의 신’도 일본 시장에 팔렸다.

리메이크를 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하얀 거탑’ 같은 건조한 느낌의 정극을 선호했다면, 최근에는 캐릭터와 에피소드 중심의 드라마가 인기다. 일본문화 특유의 과장된 캐릭터나 만화적 설정을 없애지 않고 한국식으로 강화하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직장의 신’의 미스김은 원작 주인공보다 과장됐고, ‘여왕의 교실’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문자로 대화하는 과정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한 것은 원작 이상으로 만화적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과거 드라마가 사실성을 중시했다면 이제는 판타지적 설정이 일상적”이라며 “대중은 각박한 세상살이에 드라마까지 진지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이 때문에 과장된 캐릭터 중심의 일드 리메이크작이 인기를 얻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일드 원작#드라마#여왕의 교실#직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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