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한국영화 전성시대…관객 휘감는 스토리의 힘, 올해 2억명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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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6일 07시 00분


‘승승장구하는 한국영화!’ 소재와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관객 선택폭도 넓어졌고, 이는 한국 영화의 성장에 또 다른 동력이 되었다. 사진은 올해 첫 ‘1000만 영화’ 타이틀을 얻은 ‘7번방의 선물’과 ‘신세계’, ‘연애의 온도’(위 큰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화인웍스·CL엔터테인먼트·뱅가드 스튜디오·사나이픽처스
‘승승장구하는 한국영화!’ 소재와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관객 선택폭도 넓어졌고, 이는 한국 영화의 성장에 또 다른 동력이 되었다. 사진은 올해 첫 ‘1000만 영화’ 타이틀을 얻은 ‘7번방의 선물’과 ‘신세계’, ‘연애의 온도’(위 큰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화인웍스·CL엔터테인먼트·뱅가드 스튜디오·사나이픽처스
■ 한국영화 보고 또 보고…왜?

“한국영화 때문에 장사 못 해먹겠다.”

2001년 여름 모 직배사 관계자가 푸념했다. 그해 봄 영화 ‘친구’가 무려 전국 820만 관객을 동원했고 여름 들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 속에서도 ‘엽기적인 그녀’와 ‘신라의 달밤’이 흥행을 흐름을 이어가던 때였다. 앞서 1999년 영화 ‘쉬리’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등도 600만명 흥행의 단맛을 봤다.

당시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영화의 3년 연속 흥행 및 질적 수준 향상, 관객 의식의 변화, 멀티플렉스의 증가 등에 비춰 곧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마침내 ‘1000만 관객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한국영화 2월 점유율 83%나 차지
3월 비수기에도 66%…전년보다 ↑
꺼지지 않는 흥행세 ‘2억명’ 낙관

“다양한 소재·장르 스토리가 비결”
영상문화 즐기는 3040세대 큰 힘

일부 대기업 자본 독과점은 과제
외화 무관심 다양성 문제 우려도


● 2013년의 극장 풍경

2013년 한국영화는 82.9%(2월)라는 점유율로 그 힘을 다시 한 번 과시하고 있다. 앞서 10년 동안 한국영화는 8편의 1000만 영화를 탄생시켰다. 1000만 영화는 앞으로 상시로 나올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지난해 한국영화는 관객 1억명(1억1461만여명) 시대를 맞았고 올해에는 2억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3일까지 3월 한국영화 관객수는 655만2526명, 관객 점유율은 66%다. 지난해 같은 기간 489만8000여명보다 많고, 61.2%의 점유율보다도 높다. 올해 1월부터 집계를 봐도 한국영화는 70.3%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2월의 상당한 흥행세와 비교해 3월 한국영화가 전통적인 비수기 상황에 빠진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기간 전체 관객수는 지난해 8009만여명보다 많은 9935만여명, 한국영화 관객수도 지난해 489만여명보다 많고 점유율도 높다. 이는 지난해 전체 점유율 58.8%보다 높아서 한국영화 흥행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7번방의 선물’과 ‘신세계’가 여전히 관객을 유인하는 가운데 ‘연애의 온도’와 ‘파파로티’ 등이 외화 ‘웜 바디스’ ‘장고:분노의 추적자’ 등을 제치며 박스오피스를 이끌고 있다.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흥행작 ‘엽기적인 그녀’, ‘실미도’, ‘친구’(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신씨네·시네마서비스·씨네라인 II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흥행작 ‘엽기적인 그녀’, ‘실미도’, ‘친구’(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신씨네·시네마서비스·씨네라인 II

● 스토리의 힘, 흥행을 이끌다

이처럼 한국영화의 흥행세를 가져다 주는 힘은 무엇일까. 많은 관계자는 스토리의 힘을 꼽는다.

CJ엔터테인먼트 이창현 홍보팀장은 “소재와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관객의 선택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물론 질적인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점”도 빼놓지 않았다. 이 팀장은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 사실 흥행작은 대부분 블록버스터물이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다양해진 소재와 장르가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간부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되는 시나리오의 품질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말한다. 다양해진 소재와 장르를 시나리오를 통해 스토리로 만들어내는 솜씨가 한국영화의 힘이라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세면 먹고, 약하면 진다”는 스토리의 힘은 곧 콘텐츠의 힘이다.

한국영화의 황금기였던 196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는 상당히 엄격한 소재의 제한에 묶여 있었다. 여기에 제작사 허가제 등 제도적 검열과 규제에 시달려온 한국영화는 이후 그 굴레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또 다른 중흥기를 맞았다.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가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스토리의 힘도 그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 3040세대 극장으로 달려가다

한국영화의 흥행세를 설명하는 데 이제는 30대 이후 중장년층 관객의 힘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한국영화가 호황을 맞았던 2000년대, 영화의 주 관객층으로 꼽혔던 10대 후반에서 20대였던 세대.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극장을 찾고 있다. ‘써니’,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등 세대의 감수성이 진한 영화의 흥행도 이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또 ‘부러진 화살’ ‘26년’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들도 이들의 정서를 자극했다. 투자배급사 간부는 “이들은 영상문화에 익숙하고, 가족 단위로 주거지 인근 멀티플렉스를 찾아 문화생활을 향유할 줄 아는 세대”라고 말한다.

이들의 높아진 눈에 최근 한국영화가 지닌 스토리의 힘을 관리할 줄 알게 된 영화계의 노력도 있다. 1990년대 이후 지속된 한국영화의 활황이 2006년 이후 코스닥 상장붐에 따른 투자자본의 범람,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지 못한 영화의 잇따른 흥행 실패 등으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뼈저린 경험은 이후 좀 더 체계적이고 투명한 제작 관리 등을 거쳤다.

● 이제 다양성을 향해

그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 자본의 과도한 제작 간섭과 독과점 논란, 흥행 기대작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등 여전히 해결해가야 할 과제도 남았다. 때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작은영화 혹은 독립영화에 대한 푸대접 그리고 열악한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은 창작의 의지를 꺾기도 한다. 현재 단편영화 ‘주리’는 사상 첫 1000명 관객을 돌파했다. ‘지슬’은 1만여명 관객을 넘어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은영화 혹은 독립영화들은 여전히 관객의 외면 속에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역시 또 10여년 전 “한국영화 때문에 장사 못 해먹겠다”던 외화 관계자들의 푸념은 오히려 또 다른 다양성의 문제로 아쉬움을 주고 있다. 한국영화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는 외화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리 반갑기만한 현상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제는 사라진 ‘스크린쿼터’를 지켜내기 위해 한때 한국영화 관계자들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높아진 관객의 관심을 이제 좀 더 다양한 문화적 체험으로 이끌어야 할 책무가 다시 그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트위터 @tadad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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