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설연휴 한국영화 화제작 하루 날 잡아 다 봤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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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퀸 - 세상에! 2002년 대선, 노 전 대통령이 떠오르네페이스메이커 - 김명민씨 살떨려요, 제발! 극한 연기 그만했으면부러진 화살 - 이젠 영화계의 권력 향해 활 쏠 사람 누구 없소?

설 연휴에 하루를 잡아 최근 개봉한 화제의 한국 영화들을 섭렵했다. 다음은 이들 영화를 보던 중 순간적으로 내 머리와 심장을 스쳐간 단상들.

○ 댄싱퀸

세상에! 이런 정치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멋모르고 나온 경상도 남자(황정민). 그의 아내(엄정화)가 댄스가수로 데뷔하려 한다는 사실이 상대 후보에게 포착되면서 “아내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서울을 책임지겠느냐”는 맹공격을 받게 되자 주인공은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이 한마디를 던져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다. “아내는 다스려야 할 대상이 아닙니더. 서울 시민도 마찬가집니더. 함께 손을 잡고 희망을 찾아가야 하는 가족입니더.”

아, 여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를 줄이야.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때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는 한마디로 수많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순간과 딱 포개지는 장면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갈망한다. 진정성 넘치고, 인간적이며, 순수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리더를. 동시에 나는 무섭다. 순간이 영원을 제압하고, 감성이 이성을 물리치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효과를 내고, 소통과 인기 영합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매혹적인 세상이.

○ 페이스메이커

비쩍 마른 몸으로 마라토너를 연기하며 정신과 몸의 극한을 보여주는 김명민. 정말 가공할 몰입도를 보여주는 배우다! 그런데 이런 역할, 이젠 그만하면 안 될까? 드라마 ‘하얀거탑’과 ‘베토벤 바이러스’의 성공 후 그는 ‘내 사랑 내 곁에’와 ‘파괴된 사나이’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절벽 끝까지 몰아붙이며 자기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뭐랄까. 자학을 통해 카타르시스적 성취에 이르는 예술세계!

이젠 자신을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풀어주면 어떨까. 더스틴 호프먼처럼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런 배우 말고, 스티브 매퀸이나 빌 머리처럼 ‘이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일도 흥미로운 도전일 법하다. 가장 독창적인 것과 가장 보편적인 것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게 아닐까 말이다.

○ 부러진 화살

관객을 선동하려면 이 정도는 치밀해야지. 관객을 화나게 만들면 성공한다는 이른바 ‘공분(公憤) 마케팅’이 ‘도가니’에 이어 다시금 확인되는 순간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를 떠나 이 영화를 내가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일단 재미있기 때문이다. 밀도 높은 이야기만이 관객을 설득한다는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진리가 또다시 증명되는 순간.

좋은 뜻에서든 나쁜 뜻에서든 이 세상 모든 권위가 조롱받고 무너지고 있는 요즘, 사법부라고 해서 그 화살을 비켜갈 수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한다. 이젠 영화계의 권위도 누군가가 비웃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고. 영화계의 허상, 영화계의 비리, 영화계의 모순을 속 시원하게 까발려 주는 영화가 나온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말이다. ‘영화계의 소수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한국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며 다양성을 망친다’고 역설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대기업의 엄청난 자금을 지원받아 수백 개 극장에서 와이드릴리스로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일부 유명 감독의 잘못된 권위는 누가 조롱하고 누가 깨줄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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