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늘’로 복귀한 이정향 감독 “용서가 안되는데 왜 주변서 용서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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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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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법-종교界에 본격 문제제기

이정향 감독(47)이 ‘오늘’(27일 개봉)로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이 감독은 전작 ‘집으로…’(2002년)에서 할머니와 손자의 애틋한 정을 그려 큰 공감을 이끌어냈고, ‘미술관 옆 동물원’(1998년)에서는 춘희(심은하)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젊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번에는 공백의 시간만큼 깊어진 사유를 통해 사법과 종교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우리는 범죄자들에게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영화 속 질문이 작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17세 소년에게 약혼자를 잃은 방송국 PD 다혜(송혜교)와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맞는 여고생 지민(남지현) 등 두 여성의 깊은 상처를 그렸다. 다혜는 약혼자를 죽인 소년을 종교의 힘으로 용서하지만, 흉악범죄에 희생된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면서 ‘너무 쉽게 용서했다’고 후회한다. 어둡고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다뤘지만 ‘도가니’처럼 특정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 감독을 9일 오후 해운대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공백이 길었는데 불안하지는 않았나.

“남들은 전작들의 후광이 있을 때 영화를 찍어야 투자도 확보하고 팬들도 보러 온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 스케줄대로 갔다. ‘집으로…’ 이후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려 했는데 ‘오늘’ 작업이 늦어지면서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은 힘들어졌다고 생각한다. 2005년 시작한 시나리오를 2009년에야 완성했다.”

―‘오늘’을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집으로…’에서 할머니와 개구쟁이 손자의 이야기로 400만 관객을 울렸던 이정향 감독.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오늘’은 사형제 존폐 문제 등을 다룬 사회성 짙은 영화다. 그는 이 영화에 매달리느라 결혼을 못했다고 했다. 부산=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집으로…’에서 할머니와 개구쟁이 손자의 이야기로 400만 관객을 울렸던 이정향 감독.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오늘’은 사형제 존폐 문제 등을 다룬 사회성 짙은 영화다. 그는 이 영화에 매달리느라 결혼을 못했다고 했다. 부산=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오래전 잡지에서 1999년 미국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용서도 잘못하면 죄가 된다’는 제목의 칼럼을 봤다. 사건 직후 피해자의 친구들이 교내에 ‘우리는 모든 걸 용서한다’는 플래카드를 걸었는데, ‘과연 이들이 학우의 시신이 식기도 전에 용서한다는 뜻을 표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나 이창동 감독의 ‘밀양’ 등과 맥을 같이하는 느낌이 있다.

“복수 시리즈나 ‘밀양’과는 다른 영화다. ‘오늘’은 범죄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 쉽게 말하는 세태를 비판한 영화다. 우리 사회는 인권이라는 단어에 미혹되고,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 군부독재 시절을 겪은 뒤 편향이 있는 것 같다. 용서도 중요하지만 똑같은 범죄가 반복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제도 존폐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하고 재판부의 무능함만을 꼬집었다.”

‘우리들의…’(2006년)는 ‘도가니’의 원작자인 공지영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다.

―보수적인 관점이라고 공격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사형수들을 죽여야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무기징역이 종신형이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엔 종신형이 없다. 무기징역은 최장 25년이다. 그중 많은 수가 10년, 15년 만에 모범수로 나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사형제 폐지 운동에 서명한다.”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는 사형제 폐지 논의에서 유가족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은 범죄자에게 감형해줄 때 유가족의 의견을 묻는다. 유가족이 범죄자를 만나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물을 수 있도록 한다. 이러면 유가족의 울분이 좀 풀리지 않겠는가.”

영화에는 다혜가 인터뷰한 피해자 가족들이 “(범죄자가) 모범수가 돼 나왔다는데, 그러면 우리에게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나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주변에서 먼저 용서를 하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종교 문제를 지적했는데….

“사형제 문제에 있어 가톨릭, 불교, 기독교가 큰 틀에서 비슷한 입장이라고 본다. 종교의 위선을 말하고 싶었는데 가톨릭 신자로서 내 종교를 비판하는 게 다른 종교에 떳떳할 것 같아 성당을 등장시켰다. 우리 종교계에는 용서의 정서가 만연해 있다.”

―송혜교를 캐스팅한 이유는….

“내가 시나리오를 탈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혜교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시나리오를 보여줬더니 혜교가 가슴이 먹먹하고 주인공과 자기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하더라. 진정으로 주인공 다혜를 느낀 것 같았다.”

부산=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영화 ‘오늘’ 송혜교의 또다른 빛깔이 반짝 ▼

흥행 감독 이정향과 톱스타 송혜교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다. 다큐멘터리 PD인 다혜(송혜교)는 생일날 약혼자를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잃는다. 괴로워하던 다혜는 성당을 찾아 마음을 다잡고 가해자인 17세 소년을 용서한다. 그리고 ‘용서’라는 주제로 다큐를 제작하기로 하고 다양한 사건의 피해자들을 찾아다닌다. 이 과정에서 다혜는 용서가 올바른 결정이었는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다혜의 친구 동생인 지민(남지현)은 아버지의 상습적인 구타를 참지 못해 집을 나온다. 다혜의 집에 옮겨 살게 된 지민은 약혼자를 죽인 소년을 쉽게 용서한 다혜를 이해하지 못한다. 지민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집으로 들어가라는 다혜를 향해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다혜는 다큐를 제작하다 약혼자를 죽였던 소년의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듣게 되고, 그의 ‘용서’가 야기한 뜻밖의 결과에 충격을 받는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 사랑스러운 배우 심은하를 재발견했듯, ‘오늘’이 송혜교의 다른 면모를 보여줄 기회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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