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전쟁광이 된 순수남 정신병걸릴 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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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9일 07시 00분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고수는 주연을 맡은 영화 ‘고지전’의 촬영을 회상하면서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면서도 이제는 그 마저도 추억이 됐다며 편한 웃음을 지었다. 김종원 기자 (트위터 @beanjjun) won@donga.com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고수는 주연을 맡은 영화 ‘고지전’의 촬영을 회상하면서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면서도 이제는 그 마저도 추억이 됐다며 편한 웃음을 지었다. 김종원 기자 (트위터 @beanjjun) won@donga.com
■ ‘고지전’ 고수, ‘엄살쟁이’가 된 까닭은?

치열한 고지 전투엔 대부분 등장
회식때도 구호 외치고 치열하게…
‘전선야곡’은 애창곡 됐어요
극중서 너무 일찍 죽는다고요?
계속 나오는 것도 안쓰럽죠, 하하


“어디서든 ‘힘들다’는 말은 잘 안하는 데 전쟁영화를 경험한 사람으로 얘기한다면…. 정말 힘들었어요. 하하.”

기자가 만난 인터뷰이 중에 고수(33)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에 속한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하면서 감정을 정리해 표현하는 데 능숙하다. 이런 고수가 대뜸 “힘들었다”고 했다. 영화 ‘고지전’을 찍은 소감을 말하면서였다.

“진흙탕에 빠져있던 장면, 하루 종일 뒹굴고 밖에 나와서도 군복을 벗지 못해 햇볕에 옷이 말라가고 작은 나무 가시들이 온종일 살갗을 찔렀어요. 이러다 정말 정신병에 걸리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듯이 그 역시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면서도 줄곧 ‘고지전’은 “반드시 봐야하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 “감독님, 저는 마초인가요?”

‘고지전’은 휴전을 앞두고 전선과 맞닿아 있는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남·북한이 벌이는 소모적이지만 치열한 전투를 다뤘다. 고수는 남한의 군대인 악어중대를 이끄는 주인공 김수혁 중위를 맡았다. 대학에 다니다 전쟁에 참전한 순수한 남자이지만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군대를 이끄는 강한 군인으로 변신한 의문의 인물이다.

“김수혁은 초반엔 힘이 완전히 빠져있는 남자인데 나중엔 완벽히 변화해요. 저도 헷갈릴 수밖에 없었어요. 장훈 감독님도 별 말을 안 하니 어느 날 물었죠. ‘김수혁은 마초입니까’라고. ‘마초는 아니죠’라는 대답을 듣고 여러 의문이 풀린 기분이었어요.”

고수는 영화에 등장하는 치열한 고지 전투 대부분에 등장한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은 지금까지 그가 주로 활동해왔던 멜로 영화나 드라마 속 모습과는 다르다. 누구보다 강렬한 힘을 지녔다.

“현장에 여배우가 있으면 조심스러워요. 멜로를 하면 남녀공학에 다니는 느낌인데 이번엔 남자들 속에서 오직 남자의 매력만 드러냈어요.”

스크린에서만 리더였던 건 아니다. 악어중대원을 연기한 배우들을 현장에서도 이끌었다. 회식 자리에서 그가 “악어”라고 선창하면 중대원으로 출연하는 20여 명의 연기자들이 같은 구호를 외친 뒤 술잔을 들었다. 그 뒤 모두 한 데 어우러져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전선야곡’을 부른다. ‘고지전’팀의 회식 방식이다.

“악어중대로 나온 배우들은 대학로에서는 주인공으로 알아주는 연극배우들이에요. 누구보다 연기에 애착이 강해요. 그들이 옆에 있으니 든든했어요. 촬영장에서 주·조연을 떠나 허물없이 지냈어요.”

고수는 영화가 후반부로 다다른 순간 목숨을 잃는다. 전쟁영화 주인공들이 죽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고지전’은 고수의 죽음 뒤에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새롭다.

“너무 일찍 죽었나요? 하하. 시나리오에 세 가지 버전이 있었어요. 저도 고민했는데 마지막 이야기가 강하게 펼쳐지려면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계속 전투에 나오는 것도 너무 불쌍하잖아요.”

‘고지전’은 고수와 신하균이 주연으로 나섰지만 주연과 조연의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영화다. 역할 별로 개성이 강한데다 이들이 한 데 어우러져 발휘하는 시너지도 뭉클하다.

“모두 주인공이라 생각했어요. 전 전쟁에 참여한 한 명의 군인일 뿐이죠.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잖아요. ‘고지전’이 관객에게 그런 영화가 되길 원해요. 그런데 이런 말은 제가 했다고 하면 너무 낯간지러우니까, 남들이 그렇게 얘기했다고 써주시면 안될까요? 하하.”

이해리 기자 (트위터 @madeinharry)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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