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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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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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등 최근 한국 영화 ‘잔혹극’ 넘쳐나는 까닭은사회상 반영?“엽기적인 강력 범죄에 단죄 미흡 현실속 불만이 영화에 반영된 것”의도된 계산?“높아진 관객의 자극수준 맞추다 카타르시스 공유엔 실패할 수도”

악을 철저히 응징하는 특수부대 출신 주인공을 내세운 ‘아저씨’. 관객 반응은 “화끈하고 짜릿하다”는 환호와 “불쾌하고 무섭다”는 비판으로 나뉜다.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악을 철저히 응징하는 특수부대 출신 주인공을 내세운 ‘아저씨’. 관객 반응은 “화끈하고 짜릿하다”는 환호와 “불쾌하고 무섭다”는 비판으로 나뉜다.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신체 훼손 등을 표현한 잔혹한 장면 때문에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수정 편집 중인 ‘악마를 보았다’. 살인마에게 연인을 잃은 주인공의 개인적인 복수를 다뤘다. 사진 제공 쇼박스
신체 훼손 등을 표현한 잔혹한 장면 때문에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수정 편집 중인 ‘악마를 보았다’. 살인마에게 연인을 잃은 주인공의 개인적인 복수를 다뤘다. 사진 제공 쇼박스
8일 오후 서울의 한 극장에서 ‘아저씨’를 관람한 손진민 NHN 게임사업본부 대리(29·여)는 기분이 찜찜했다. 영화는 시종 흥미로웠다. 하지만 극장을 나와 걷다가 사람 몸을 잔인하게 찌르고 베던 영화 속 칼싸움 동작을 장난스레 흉내 내는 남자 친구를 보니 어쩐지 섬뜩했다. 잔혹한 장면에 놀란 여자 관객들의 비명도 떠올랐다. 손 씨는 “내가 저렇게나 지독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건가 하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원빈 주연의 ‘아저씨’는 개봉(4일) 닷새 만에 관객 97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으며 지난 주말 국내 흥행 1위에 올랐다. 하지만 “멋지고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이라는 호평 못잖게 살해 장면의 자극적 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5일 이 영화를 본 최현철 씨(21·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는 “그냥 잘생긴 주연배우의 화보집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며 “창작자의 의도가 있겠지만 사람 죽이는 싸움을 꼭 그렇게까지 선정적으로 표현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12일 개봉 예정인 ‘악마를 보았다’가 4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으며 살상 장면의 표현 수위 문제는 거듭 한국 영화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영등위는 등급 판정과 관련해 “개에게 인육(人肉)을 먹이로 주는 장면 등이 인간성을 훼손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제작사가 “영등위 지적을 수용해 재편집하겠다”는 입장이라 제한상영가 판정이 나올 때마다 불거졌던 표현의 자유 논란은 잠잠하다. 주목의 대상은 최근 개봉한 영화들의 잔혹한 표현 뒤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키워드인 ‘복수’다.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는 모두 패륜적 범죄자에 대한 피해자 또는 관련인의 사적(私的)인 복수 이야기를 그렸다. 올해 앞서 개봉한 ‘무법자’와 ‘파괴된 사나이’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특수부대 출신인 ‘아저씨’의 주인공 태식(원빈)은 친하게 지내던 옆집 꼬마의 유괴를 계기로 범죄 집단과의 싸움에 말려든다. 처음에 “아이만 돌려주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던 태식은 영화 후반 “아이가 무사하건 않건 너희는 내 손에 죽는다”고 말한다. 그의 분노는 얼핏 장기매매를 일삼는 악독한 무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인다. 복수의 방법은 원인을 제공한 범행 이상으로 잔인하다. 팔과 다리를 잘라 내거나 목을 칼로 그어 피가 솟구치는 장면 등은 예사롭게 나온다. 하지만 악당의 살을 찢고 뼈를 분지르는 응징을 통해 태식이 해소하는 것은 결국 불행했던 과거로 인해 생긴 개인적 원한이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억압된 욕구에 대한 대리만족은 영화뿐 아니라 광범위한 예술의 기본적 역할”이라며 “최근 엽기적 강력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는 데 비해 그 단죄는 미흡하다는 공감이 사회 구성원의 공통적 욕구로 깔려 있다. 이 같은 정서가 문화적 생산물에 반영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운 감독이 최민식 이병헌을 주연으로 기용해 연출한 ‘악마를 보았다’는 연쇄살인범에게 약혼녀를 잃은 국가정보원 요원의 복수극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역시 공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복수에 나선다. 그 과정에 삽입된 신체 훼손 등 잔혹한 장면이 등급판정에서 문제가 됐다. ‘무법자’와 ‘파괴된 사나이’는 영화 속 범죄자에 대한 관객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집단강간과 교살, 유괴된 아이에게 돌과 흙을 먹이는 등의 끔찍한 장면을 보여줬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한정 높아진 관객의 역치(<値·반응을 얻기 위한 자극의 최소 강도)를 감당하기 위해 영화의 표현이 현실을 압도하고 있다”며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 속 거울 이야기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눈의 여왕’에는 현실을 왜곡해서 비치도록 만든 악마의 거울이 등장한다. 이 거울의 파편을 눈에 맞은 사람은 현실의 모든 대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우종민 인제대 의대 신경정신과학교실 교수는 “말초적 흥분 요소로 채워진 영화는 일부 관객에게 위험한 자극을 줄 수 있다”며 “잔혹한 장면을 얼마나 실감나게 만드느냐에 몰두하다 보면 관객과 정말 나누고 싶은 카타르시스의 공유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영화 ‘아저씨 예고편’







▲영화 ‘악마를 보았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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