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사냥감 씨가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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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7일 1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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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수입업자들 “살 만한 영화 안보여”
드물게 발견되는 ‘秀作’은 가격 턱없이 비싸

"이곳저곳 구석구석 둘러봐도 도무지 살만한 영화가 없어요. 우리로서는 이 마켓이 한해 먹고 살 식량을 모내기하는 곳인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63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본부인 팔레 드 페스티벌 부근의 한 카페에서 15일 오후 만난 김동영 새인컴퍼니 마케팅팀장의 얼굴은 푸석했다. 하루 종일 영화제 마켓을 돌아다닌 피곤함보다 만족할만한 영화를 찾지 못한 허탈감이 커 보였다. 동행한 김태원 해외사업팀 대리는 "시장 변화에 따라 나름 대응 전략을 세워 왔지만 별 소용이 없다"며 "사냥터가 변했다기보다는 사냥감의 씨가 말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했다.

●"돈이 있어도 살 영화가 없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비교해 보면 영화 팬들의 눈길을 끄는 '스타 파워'는 칸 영화제가 미미한 편이다. 그럼에도 영화 관련 사업을 하는 이들은 한해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칸 영화제를 꼽는다. 1959년부터 해마다 세계 100여개국의 영화 텃밭에서 나온 수확물을 한 자리에서 보고 수출입 계약을 주고받는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17일까지 마켓 사무국에 등록한 수입업자 수만 1082명. 한국에서 온 수입업자도 43명이다.
하지만 올해 칸 영화제의 필름 마켓은 변변찮다는 평을 받고 있다. 14~16일 팔레 드 페스티벌 옆 마켓을 오가며 만난 한국 영화수입업자들은 한결같이 빈손이었다. 16일 만난 김원국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칸에 온 게 올해로 12년째인데 이런 적이 없었다"며 "살만한 영화가 적은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인다"고 말했다.
"좋은 영화가 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은 미국 상업영화이지만 칸 마켓에서 틈새시장을 노리고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렛 미 인'처럼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영화들도 꾸준히 수입해 왔죠. 올해도 그런 영화들이 몇몇 있긴 합니다. 하지만 가격이 턱없이 비싸요. 흉작 때문에 발생한 인플레인 셈이죠."
영화 시장이 전반적으로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드물게 발견되는 수작에 바이어들이 경쟁적으로 몰려들어 가격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부가판권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매출의 90% 이상을 극장에서 얻어야 하는 한국 영화수입업체로서는 흥행성이 담보되지 않는 영화에 도박을 걸 수 없다. '브라더스' '데이브레이커스' 등 작품성 또는 독특한 장르적 성격이 돋보이는 영화에 주목해 온 새인컴퍼니는 2009년 9개 외국영화를 국내 개봉해 약 30억 원의 적자를 냈다. 김 팀장은 "영화당 지출 폭을 늘려 보다 덩치 큰 상업영화를 찾는 수 밖에 없게 됐다"며 "그런 길을 찾는 데 칸 마켓이 효용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녀' 4개국에 팔려
시사회장 안팎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하녀'는 영화제 개막 전에 프랑스 등 4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제작사인 미로비전 관계자는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들의 러브 콜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포화 속으로'도 마켓 시사회 전에 독일에 팔렸다. '시'는 스페인, 대만, 유고슬라비아에 판매됐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는 '악마를 보았다'도 프랑스 배급사 ARP에 팔렸다.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칸 국제영화제 데일리에 한국영화 특집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모든 한국 영화가 좋은 시절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수출업체 M라인의 추소연 과장은 "한류 열풍이 한창일 때 10만 달러 이상에 판매되던 품질의 영화들이 이제는 1만 달러 정도 선에서 얘기가 오간다고 보면 된다"며 "몇몇 화제작의 선전이 전반적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칸=손택균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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