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기술집착이 부른 입체영상의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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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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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개봉 그리스 신화 액션 타이탄

‘타이탄’은 ‘잘 만든 2D가 어설픈 3D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제작사는 2D로 제작한 영화를 3D로 전환하기 위해
 개봉일을 늦췄지만 결과물은 ‘아바타’에 익숙해진 관객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타이탄’은 ‘잘 만든 2D가 어설픈 3D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제작사는 2D로 제작한 영화를 3D로 전환하기 위해 개봉일을 늦췄지만 결과물은 ‘아바타’에 익숙해진 관객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1일 개봉한 ‘타이탄’은 3차원(3D) 입체영상 기술에 대한 서투른 집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3D 상영을 선택한 관객은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기 전부터 거추장스러운 편광(偏光) 안경을 쓰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해질 것이다. 흥행 성적은 좋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개봉 닷새 만에 관객 108만 명을 넘었다.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가운데 100만 관객 돌파가 가장 빨랐다.》

주연 샘 워싱턴은 2009년 새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할리우드에 얼굴을 알린 배우.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일생일대 야심작 ‘아바타’의 주연을 맡긴 이유를 납득하게 만드는 박력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샘 워싱턴)다. 올림포스를 지배하는 최고신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半神半人). 눈빛으로 사람을 돌로 만드는 괴물 메두사, 식인 바다괴물을 차례로 물리치고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목 ‘타이탄’은 올림포스 신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사라진 신족(神族)을 지칭한다. 페르세우스는 그 올림포스 신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다.

전갈이나 바다뱀 같은 덩치 큰 괴물이 위용을 드러내는 장면, 주인공이 날개 달린 천마(天馬)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누비는 장면 등에서 미미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4개월 전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펼쳐낸 3D 이미지와는 맞대놓고 비교할 수 없다. 사물의 양감(量感)을 전하지 못하고 그저 풍경의 원근감만 강조한다.

원래 ‘타이탄’의 세계 동시개봉 예정일은 3월 25일이었다. 2월 들어 개봉 일자를 한 주 늦추면서 언론공개 시사도 개봉 직전인 3월 30일에야 열었다. 2차원(2D)으로 촬영한 필름을 3D로 바꾸는 후반작업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3D 필름은 시사 하루 전날에야 한국에 도착했다.

2D 필름 급작스럽게 3D로 컨버팅
울퉁불퉁 양감 없이 풍경 원근감만
박력 넘치는 샘 워싱턴 연기는 호평
개봉 5일만에 관객 108만명 돌파


영화가 사정에 따라 개봉 시기를 조절할 수는 있다. 그러나 1억2500만 달러(약 14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개봉 일자를 갑자기 바꾸는 일은 흔하지 않다. ‘아바타’가 거둔 세계적 흥행에 자극을 받아 2D로 개봉하려던 영화를 급작스럽게 3D로도 선보이려다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같은 ‘3D 영화’ 수식을 걸었지만 ‘아바타’와 ‘타이탄’은 제작 방법이 다르다. ‘아바타’는 촬영부터 3D 영화용으로 개발한 카메라를 사용한 반면 ‘타이탄’은 기존의 2D 영화와 같은 방법으로 찍은 필름을 3D로 변환했다. 이 ‘후반 3D 컨버팅(converting) 방식’은 원경과 근경의 차이가 느껴지도록 하기는 쉽지만 울퉁불퉁한 입체의 양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타이탄’에 앞서 3월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후반 컨버팅 방식을 썼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작자인 리처드 재넉은 “왜 굳이 3D 카메라로 어렵게 영화를 찍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로 빚어진 영상의 3D 표현은 ‘아바타’를 경험한 관객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3D 상영관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타이탄’은 그럭저럭 즐길 만한 액션영화다. 개봉 초반 흥행이 탄력을 받은 것도 3D 효과보다는 시원한 액션에 대한 호평 덕이 커 보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개봉 초반 흥행몰이엔 성공했지만 3D 영상에 비판적 의견이 나오면서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5일 현재 ‘타이탄’을 상영하는 스크린은 591개. 3D 상영관은 88개다. 가급적 2D로 안정적인 액션 장면을 즐기길 권한다.

주의할 대목은 스토리. 12세 이상 관람가지만 이 영화는 그리스 신화 책의 대체재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렇잖아도 헷갈리기 쉬운 두 영웅을 뒤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충실히 따르는 페가수스는 신화 원전에서 페르세우스보다 한참 뒤에 이어지는 벨레로폰 이야기에 등장한다. 벨레로폰은 메두사의 시체에서 태어난 페가수스를 타고 괴물 키마이라를 죽인 영웅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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