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다큐를 보는듯한 담백한 감동 ‘인빅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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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8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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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지난해 예상 밖의 흥행몰이를 했던 스포츠 영화 '국가대표'.

그 내용이 무색하게 올해 벤쿠버 겨울 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진짜' 우리 국가대표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국민은 올 겨울 너무나 행복했다.

많은 스포츠 영화들이 감동적인 기적을 그려내고 있지만, 2002년 월드컵축구 4강 신화를 이루고 벤쿠버 올림픽 종합 순위 5위라는 성적을 일구어낸 우리 국민에게 스포츠 드라마의 '기적'은 '현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거장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의 새 영화 '인빅터스'는 마치 다큐를 보는 듯 담백하고 진솔하게 스포츠의 기적과 감동을 그려내고 있지만, 강력한 무언가를 바라는 한국 관객의 기대에는 못 미칠 것 같다.

▶ 만델라가 찾아낸 흑백 화합의 최고의 수단 '럭비'

무려 27년이라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풀려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 분). 그는 남아공 국민들의 지지와 기대 속에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오랜 인종차별이 남긴 수많은 난제들 앞에서 불철주야로 일하는 그를 흑인들은 '마디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쉴 새 없는 그의 스케줄을 따라 경호를 해야 하는 경호팀장은 뜻밖에도 흑인들 외에 새로 배치된 백인 경호원들과도 함께 일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놀라 항의해 보지만, 흑백간의 화해와 융합을 최우선시하는 대통령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한편 남아공에서 개최되는 럭비월드컵을 대비해 열심히 훈련 중인 럭비대표팀. 흑인국가대표선수가 1명뿐일 정도로 백인들의 전유물이다시피한 럭비는 흑인들에게는 관심 밖의 종목이다. 특히 전통의 럭비대표팀 '스프링복스'는 국가대항전에서 약체로 평가돼 16강도 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시대가 바뀌어 흑인 위주로 구성된 국가스포츠위원회는 백인위주의 스프링복스팀을 해체하고 이름도 바꾸기로 의결한다.

이런 결정을 전해들은 만델라 대통령은 긴급한 회의들을 제쳐두고 위원회로 달려가서 이미 의결된 사항을 뒤집을 것을 종용한다. 오랜 수감기간 동안 책을 통해 백인사회를 연구한 그는 백인들이 좋아하는 럭비와 그들의 우상인 스프링복스팀을 흑인들이 유지시키고 포용하는 것이 흑백화합의 최고의 방법임을 설득한다. 그리고 스프링복스팀의 주장(맷 데이먼)을 대통령청사로 불러서 월드컵에서의 그들의 실력을 끌어올릴 '비법'을 전수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의 클라이맥스. 주장 피나르(가운데·맷 데이먼)는 동료들에게 그들이 짊어진 나라의 ‘운명’을 확인시킨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의 클라이맥스. 주장 피나르(가운데·맷 데이먼)는 동료들에게 그들이 짊어진 나라의 ‘운명’을 확인시킨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 다큐를 연상시키는 담백한 리얼리티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과장이 없는 담백한 연출이다.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과장과 드라마틱함은 찾아보기 어렵고 다큐를 연상시킬 정도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주인공 모건 프리먼의 행동과 대사는 실제 만델라 대통령의 일상을 다큐로 찍는다고 해도 비슷할 만큼 과장된 부분이 전혀 없다. 대통령을 둘러싼 비서, 경호실 및 기타 직원들의 표정, 행동과 대사들도 마찬가지다.

스프링복스팀의 주장역인 맷데이먼과 선수들의 경우도 특별히 튀는 캐릭터나 대사가 없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 지루하게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등장인물이 실존 인물로 착각될 만큼 뛰어난 리얼리티로 인해 그들의 작은 표정,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실감나게 와 닿기 때문이다.

담백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리얼리티를 구현하기 위해 세심한 연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 핵심에는 모건 프리먼의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무게 있는 연기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또한 흑인 특유의 코러스가 돋보이는 아프리카 음악들은 이 영화가 주는 잔잔한 감동을 배가시킨다.

우리가 군사 독재 하에 있었던 1980년대에는 흔히 '3S 정책'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즉 독재 정치가들이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스포츠, 섹스, 스크린을 활용했던 정책을 말한다. 그러나 거꾸로 이 영화는 흑백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들을 화합시키기 위해 만델라 대통령이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어떻게 잘 이용했는가를 그려낸다.

결국 그 목적이 얼마나 순수한가에 따라 정치권력의 스포츠 활용은 '계략'이 아니라 '지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만델라 대통령의 흑백화합을 위한 관심과 열정, 그리고 영감(inspiration)은 대표팀에게도 전달돼 약체였던 남아공팀이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기적을 이룬다. 백인의 스포츠라고 생각해서 관심도 없던 흑인 경호원들도 월드컵 우승에 기쁨의 미소를 터뜨리고, 흑백을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럭비 월드컵 우승을 기뻐하게 만든 것은 국민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넬슨 만델라의 혜안과 열정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 예상을 뒤집는 획기적인 것이 없는 아쉬움

그러나 이런 잔잔한 감동을 받으면서도 이 영화에는 관객들이 바라는 뭔가 획기적이고 예상을 뒤집는 것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이 영화를 보면서 시종일관 생각나는 것이 2002년 월드컵이었다. 당시 세계는 물론 우리 스스로도 놀라게 했던 '붉은 악마'의 열정과 함성이 아직도 우리의 가슴과 뇌리에 생생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때의 감동에는 솔직히 못 미치는 느낌이었다.

우리도 2002년 월드컵이나 김연아 선수의 스토리를 영화화하는 것은 어떨까? 특히 김연아가 직접 주연하는 자신의 스토리를 해외수출용으로 '잘' 만든다면?

요즘 관심 높은 국가브랜드를 높이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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