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Q|‘예솔이’이자람을만나다] 기타 잡은 기네스 소리꾼…‘예솔이’는 삐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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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7일 07시 00분


판소리꾼으로 잘 자란 예솔이
‘이·자·람’을 만나다

판소리꾼에서 포크록그룹의 리더까지 1인 다역을 해내고 있는 ‘국악종합엔터테이너’ 이자람. “예솔아∼”하면 당장 “네에∼”하고 달려올 듯 해맑은 얼굴이 여전하다. 이자람이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사진제공=홍상균]
판소리꾼에서 포크록그룹의 리더까지 1인 다역을 해내고 있는 ‘국악종합엔터테이너’ 이자람. “예솔아∼”하면 당장 “네에∼”하고 달려올 듯 해맑은 얼굴이 여전하다. 이자람이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사진제공=홍상균]
‘춘향가’ 최연소 최장시간 완창 세계기록
퓨전 판소리·포크록까지…삐딱이? 도전!
예솔이 시절로 가도 난 소리꾼이 좋아요

1984년이니 이제 26년이나 된 일이다. 그 해 전국은 ‘예솔이’ 신드롬을 앓았다. 이름에 ‘솔’자가 들어간 아이들이 대거 양산된 것도 노래 ‘내 이름 예솔이’가 나온 뒤의 일이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 ‘예’하고 달려가면 ‘너 말고 네 아범’∼♪”라는 가사가 여전히 친근한 이 노래는 가요로 출발했지만 불과 몇 달도 안돼 국민동요의 반열에 올랐다.

과연 그때 그 예솔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굳이 낡은 옛 사진첩을 꺼내들 필요도 없다. 그 예솔이는 훌륭하게 자라 우리 시대의 빛나는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창작판소리의 미래이자 21세기 소리꾼, 한국형 포크록 그룹의 리더. ‘그때 그 예솔이’는 이자람이란 이름으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 먼 데 안 가고, 바로 지금 우리들 곁에서. 아직도 노래에 등장하는 ‘예솔이’를 본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되지만 진짜 이름은 이자람이다. 방송작가이자 가수였던 아버지 이규대씨와 ‘내 이름(예솔아!)’ 음반을 냈을 때가 다섯 살. 1979년생이니 올해 서른하나가 됐다.

“11살 때 판소리를 배우는 프로그램에 ‘예솔이’로 출연했다가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이자 전북도립국악원 예술감독을 지내신 은희진 선생님을 만났죠. 처음 분장실에서 뵀을 땐 입도 안 벌렸어요. 선생님이 어르고 달래고 해서 겨우 입을 뗐죠.”

그러다 선생의 ‘진짜’ 제자가 됐다. 선생은 왕초보 제자에게 심청가 중 젖동냥하는 장면부터 가르쳤다. 피아노로 치면 바이엘을 건너뛰고 체르니30부터 시작한 격이었다. 첫 제자이자 수제자 이자람에게 ‘젖을 먹이듯’ 정성을 쏟았던 은희진 선생은 2000년 암 수술 후 54세의 이른 나이에 타계했다. 이자람이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으로 장장 8시간 동안 춘향가를 완창해 기네스북에 오른 이듬해였다.

이자람은 국립국악중·고등학교, 서울대 국악과를 다녔다. 첫 스승이 타계한 뒤 판소리의 거장들인 오정숙, 송순섭, 성우향 명창으로부터 사사했다. 판소리꾼으로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 그렇다고 학창시절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고2 때의 이야기. 자율학습 시간에 잡지를 보다 담임선생님에게 걸렸다. 선생은 잡지를 둘둘 말아 이자람의 머리를 툭툭 때리며 야단을 쳤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선생의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 팠다.

다섯살 예솔이
다섯살 예솔이


“네가 예솔이면 다야?”

화가 솟구쳤다. 자습시간에 잡지를 봤다는 이유가 아닌 ‘감정’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집어던지고는 “학교 못 다니겠다”고 했다. 자퇴서를 내고 집에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사복을 입고 교장실 소파에 앉아 설득 당했다(?)

“사실은 감동받았죠. 일개 학생에게 교장선생님이 그것도 일주일 동안이나 자퇴서를 수리 안하고 기다렸다가 말씀하신 거잖아요. 지금도 선생님 뵈면 ‘덕분에 여기까지 걸어오게 됐다’고 감사드려요.” 그때 그 교장선생님이 현 국악방송의 윤미용 이사장이다. 고교 재학 중이던 18세 때 학교 극장에서 심청가 4시간 완창 공연을 했다.

“난리를 한 번 폈잖아요. 이미지 쇄신도 할 겸 도전한 거죠. 흐흐”

심청가 4시간을 다 하고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선생이 “4시간하고 기운이 뻗치는 거 보니 8시간도 하겠다. 말 나온 김에 얼른 하자”고 했다.

8시간짜리 춘향가 완창을 준비하는 2년 동안 이자람은 ‘내가 너무 고독한 장르의 예술을 택했구나’하고 처음 깨달았다. 관객과 무대에서 소통하기 위해 판소리를 하는데 준비하는 동안은 주변과 지독스러울 정도로 차단하고 살아야 하는 이 ‘죽일 놈의’ 딜레마.

국악뮤지컬집단 ‘타루’를 만든 것도 소리꾼으로서 소통을 하고 싶어서였다. 8시간 춘향가를 완창하고 나니 지금까지 다른 소리꾼이나 다른 유파와 만나본 일이 거의 없었다는 황당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소리꾼들과 맥주 한 잔 하고 싶어서 만든 거죠. 이름만 들어봤던 사람들에게 한 명씩 전화해서 ‘나 소리하는 이자람인데, 나랑 같이 뭐 한 번 해볼래요?’했어요.”

이자람은 2002년 창립부터 2007년까지 타루 대표를 지냈다. 이자람의 예술세계는 무척 다양하다.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등 소위 ‘오대가’로 불리는 정통 판소리는 물론이고 국악과 재즈, 록, 일렉트로니카 등을 섞은 퓨전음악, ‘사천가’로 대표되는 창작 판소리, 끝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포크록그룹 ‘아마도이자람밴드’ 활동 등 전천후로 활동한다.

특히 이자람이 직접 곡과 가사를 만든 ‘사천가’는 ‘21세기형 판소리’로 평가받으며 젊은 판소리꾼들에 의해 매년 공연되고 있다. 그녀에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판소리, 재즈, 록, 클래식, 포크 중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을까요?”라고 물었다. 이자람은 ‘숨도 안 쉬고’ 대답했다.

“판소리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든, 내 몸 안에 지극히 한국적인 언어, 뉘앙스가 녹아있다는 건 굉장한 무기가 되거든요. 그 위에 더 많은 것을 접수할 수 있으니까. ‘난 선택받았다’라는 느낌이 든다면, 건방져 보일까요?”

○‘예솔이’ 이자람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은희진, 오정숙, 송순섭, 성우향 사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및 음악대학원 졸업
▲1999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 최연소 최장시간(8시간) 완창 세계 기네스 기록
▲2003 ‘구지 이야기’ 작/작창/출연
▲2005 올해의 예술상 전통예술부문 수상
▲2007 영화 ‘가루지기’ 소리감독
▲2007 판소리 ‘동초제 수궁가’ 완창
▲2007년 창작판소리 ‘사천가’ 초연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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