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마스타]가사에 공감하는 ‘우주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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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14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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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히피는 눈으로 보는 가수가 아닌 귀로 듣는 고전적 가수다.
우주히피는 눈으로 보는 가수가 아닌 귀로 듣는 고전적 가수다.
요즘 가사 좋은 대중가요 들어본 적 있나요?


TV가 보편화되기 이전의 대중음악이라 함은 아마도 '다방에서 흘러나와도 무방한 노래'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테이블 앞의 커피 한잔,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노랫말과 멜로디…. 대중음악의 힘은 시적인 표현이 담긴 가사, 마음의 위로와 힘이 되어 주는 가사와 선율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제는 가요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는 시대가 됐다. 가사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가창력 혹은 이를 뒷받침 하는 패션이나 안무가 가수들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후크송이라는 미명아래 "텔미텔미테테테테텔미…" "링딩동링딩동링리리리리링딩동…" 하고 어린이 옹알이 같은 주문들을 외우며 2010년은 밝았다. 음악 팬들이 점점 더 유아적인 취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우주히피의 메인보컬과 기타를 담당한 열혈남아 한국인
우주히피의 메인보컬과 기타를 담당한 열혈남아 한국인

▶가사가 증발해 버린 21세기 대중가요

김민기의 '가을편지'나 양희은의 '아침이슬', '백구' 등을 떠올려 보면 간단하다. 그 음악 속에 내재된 내용이 한편의 드라마 같다.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대중매체를 통해서 들었던 가요는 대부분 가사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고(故) 김광석은 "가수란 자기가 부른 노래 대로 인생이 풀리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 대로라면 최근 대중음악 시장의 아이돌은 나중에 어른이 아닌 어린이가 되어 동요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힙합이든 랩이든 댄스든 어른들이 듣는 음악과 아이들이 듣는 음악을 경계 짓는 중요한 기준점은 메시지의 전달력이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나 이은미의 '애인있어요'는 세대 구분 없이 모두들 공감하게 한다. 이것은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되기 때문이다.

1992년 서태지의 등장으로 기성세대가 혼란에 빠진 이유는 '가사가 안 들린다'는 점이었다. 가사가 전달되지 않는 대중가요라니? 이 대목은 현대 대중가요와 그 이전 세대의 가요를 구분 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물론 좋은 가수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내용전달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기에 충분했다. 고 김정구 선생이 부른 '두만강 푸른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눈물 젖은 두만강)'은 한국전쟁 이후 시대상을 그대로 나타내서 대중들에게 이후 50년간 사랑을 받지 않았나.

현재 대부분의 가수들은 대형기획사에서 트레이닝이라는 것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에게 노래가사란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한 듯 보인다. 그저 소가 우는 듯한 창법이나 계란이 목에 걸린 듯한 창법으로 격렬하게 춤을 추는 법, 혹은 숙소 앞에 몰려든 팬에게서 도망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주히피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www.gompang.pe.kr에서 찾을 수 있다.
우주히피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www.gompang.pe.kr에서 찾을 수 있다.


▶ 대형기획사 출신 아이돌에게 가사전달력은 뒷전

여기서 새로운 도전을 하나 얘기하고 싶어진다.

2009년 초 데뷔앨범을 발표하고 이후 사뿐사뿐 경쾌한 행보를 보이는 포크 록밴드가 있다. 이름도 독특한 '우주히피'. 멤버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세 남자 한국인(보컬&기타) 김충선(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오진호(드럼)이다.

이들은 밴드 이름에 대해 서태지(본명 정현철)가 자신의 예명을 "서와 태, 그리고 지가 좋아서 이어보았다"는 말과 흡사하게 "우주라는 말과 히피라는 말이 좋아서 이어보았다"고 설명한다. 드라마 대사에 나왔던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야" 처럼 이들은 자유로운 인생을 즐겼고 항상 뒤에서 지원사격을 하던 가수였다.

이들의 데뷔앨범이 많은 이들의 MP3플레이어에서 자주 재생된 까닭은 가사 읊조림만으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공감의 울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열곡도 채 되지 않았던 1집 앨범은 M&F의 이성우(영화음악감독)의 픽업에서 시작됐다.

제천국제영화제에서 공연했던 우주히피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됐고 국내 양대 영화음악제작사로부터 러브콜을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만 해도 통기타와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간단한 드럼세팅으로 몇몇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소통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니아가 늘어갔고 누구라도 한번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의 음악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됐다.

우주히피가 조용히 일으킨 바람은 가사의 힘이었다.
노래가 주는 마력은 상당부분 진솔한 가사에서 나온다.
노래가 주는 마력은 상당부분 진솔한 가사에서 나온다.

▶ '하루는' (우주히피, 2008)

처음에 일을 잊은 건 아닌데 그렇게 미친 듯이 무언가를 향해
내 모든 것을 걸기에는 이제 나도 너무 자라 어른이 되고

그 누구나 비슷비슷하단 말은 내게 위로가 안 돼 치유도 없지
하루는 힘들기만 해 내 맘과 다른 일로 가득 찬 오늘 또 하루

그러다가도 지나가는 예쁜 여자에겐 눈을 돌리는 나도 같은 사람
그래도 어두운 이 세상에 한 떨기 꽃이 되고 싶었지

달이 걸리면 나는 정신을 놓아버리네

하루는 죽을 것 같다가도 하루는 살만해 난
하루는 미친 것 같다가도 하루는 멀쩡해

하루는 힘들기만 해

모두가 잠든 이 밤 그 누굴 생각한다해도 나는 참 나쁜 사람
그래도 어두운 이 세상에 한 떨기 꽃이 되고 싶었지

달이 걸리면 나는 정신을 놓아버리네

하루는 죽을 것 같다가도 하루는 살만해 난
하루는 미친 것 같다가도 하루는 멀쩡해

하루는 죽을 것 같다가도 하루는 살만해 난
하루는 미친 것 같다가도 하루는 멀쩡해

하루는 힘들기만 해

이런 가사는 메인보컬 한국인(36)의 거리 공연에서,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하루하루 속에서 탄생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이들과의 눈치싸움과 기싸움. 그리고 외모지상주의 속에서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젊은이들에게 마치 탐웨이츠(TOM WAITS)의 "01'55""와 같은, 퇴근길에 들른 선술집 같은 아늑함과 그 주인이 건네는 첫마디와 같은 뜨뜻한 기분을 선사한다.

"오늘도 힘들었겠네, 국인씨!"

이런 기분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본질인 위로를 쥐어준다. 슬플 때는 더 슬픈 음악으로 기쁠 때는 더 기쁜 음악으로 감정을 다스린다는 걸 들어봤을 것이다. 우주히피의 첫 앨범에는 의사와 약사가 동시에 처방을 내린 것 같은 정신의 약이 차곡차곡 들어있다. 우주와 히피라는 의사와 약사. 첫 곡에서 대부분 아차하며 무릎을 친다.

"어찌 그리 예쁜가요".

당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혹은 한 동안 못 들어 본 말이 아닌가. 말의 힘은 누가 따로 얘기하지 않아도 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살면서 말 한마디로 웃고 우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가사의 힘이다.
김마스타 / 가수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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