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번이 마지막 영화” 각오… 세상에 또 하나의 질문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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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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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개봉 의형제

前국정원 요원과 간첩 이야기
무거운 주제 밝은 톤으로 펼쳐

장훈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의형제’에는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처럼 여배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총각인 장 감독은 “다음에는 꼭 여배우 주연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원대연 기자
장훈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의형제’에는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처럼 여배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총각인 장 감독은 “다음에는 꼭 여배우 주연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원대연 기자
데뷔작은 소지섭과 강지환. 두 번째는 송강호와 강동원. 2월 4일 개봉하는 ‘의형제’(15세 이상 관람가)의 장훈 감독(35)은 ‘배우 복’이 많은 사람이다. 영화 두 편을 만들면서 내로라하는 인기 배우 네 사람을 차례로 맘껏 썼다. 단도직입 “뒤를 봐 주는 힘 있는 사람이라도 있냐”고 물었다. 장 감독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장남이에요. 대학(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을 마친 뒤 무턱대고 영화판에 뛰어들었을 때 친구들이 한결같이 말렸어요. 수입 거의 없다, 고생만 하다가 사람구실 못하게 될 거다….(웃음) 가진 것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겁 모르고 뛰어든 겁니다.”

‘의형제’는 파면당한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송강호)와 북한 남파공작원 지원(강동원)의 기이한 동거를 그린 첩보액션영화다. 두 배우의 얼굴로만 가득 채운 포스터처럼 영화는 송강호의 연기력과 강동원의 매력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하지만 장 감독의 이야기 엮는 솜씨도 전작 ‘영화는 영화다’(6억5000만 원)보다 다섯 배 늘어난 제작비만큼 좋아졌다.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는 전 국정원 요원과 간첩의 콤비플레이를 깔끔하게 풀어냈다.

“지명도 높은 배우와 흥미로운 첩보전 이야기로 ‘안전하게’ 만든 것 아니냐고요?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얘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어려서부터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 끌리는 편이었어요. 조직폭력배의 비극적 죽음으로 끝난 데뷔작은 취향에 맞았죠. ‘의형제’는 무거운 주제를 밝은 톤으로 펼쳐낸 영화입니다. 이번에도 우울한 느낌을 추구했다면 그게 정말 ‘안전’한 것 아니었을까요?”

‘의형제’는 익숙해진 ‘추격자’ 스토리를 휴머니즘으로 변주한다. 파면당한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가운데)와 북한의 남파간첩 지원(아래)은 차츰 쫓고 쫓기는 자 이상의 ‘관계’로 얽혀간다. 사진 제공 영화인
‘의형제’는 익숙해진 ‘추격자’ 스토리를 휴머니즘으로 변주한다. 파면당한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가운데)와 북한의 남파간첩 지원(아래)은 차츰 쫓고 쫓기는 자 이상의 ‘관계’로 얽혀간다. 사진 제공 영화인
상대방을 이용하려고 서로에게 접근한 한규와 지원은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조금씩 정을 쌓게 된다. 나쁜 뜻을 품고 만난 두 남자가 혈육 같은 애정을 키우는 과정이 더스틴 호프먼과 존 보이트 주연의 ‘미드나이트 카우보이’(1975년)를 연상시킨다. 장 감독은 “그런 영화가 있느냐”며 겸연쩍다는 듯 웃었다.

“할리우드 키드를 자처하며 비디오에 빠져 살았던 적도, 영화 관련 책을 열심히 읽은 적도 없습니다. 졸업 후 취직할 마음을 접고 나서 김기덕 감독님을 찾아갔죠. ‘뭐든 경험해보고 나면 그걸 하고 싶은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다’라며 일을 맡겨주셨어요.”

‘사마리아’ 연출부 막내로 처음 출근한 날이 2003년 10월 1일. 부모에게는 다음 영화 ‘빈 집’을 마치고 나서야 사실을 고했다. 공부 잘하던 아들이 좋은 대학 나와 번듯한 직장 다닐 생각을 안 했다는 걸 뒤늦게 안 부모는 서운해했다.

“죄송했죠. 하지만 대학 때 고민했던 삶에 대한 질문을 사회인이 됐다는 핑계로 내려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디자이너가 사무실이나 술자리에서 ‘인생이 뭐냐, 인간이 뭐냐’ 얘기하지 않잖아요. 영화는, 일 자체가 그런 대화입니다.”

장 감독은 어릴 때부터 늘 한 박자 늦었다. 중학교 때까지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다가 뒤늦게 180cm로 자랐다. 목소리도 작아서 말하기보다는 듣는 일에 익숙했다. 다른 이가 쓴 시나리오를 다듬어 두 편의 영화를 말끔하게 뽑아낸 솜씨는 그런 성격에서 나왔다.

“늘 ‘이 영화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나는 이런 감독’이라고 선을 긋기 싫습니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싶거든요. 존재감 없던 꼬마였던 내게 ‘영화라는 확성기’는 정말 엄청난 선물이죠. 전생에 좋은 일 좀 했나 봐요.”(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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