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KBS ‘개콘’ 속의 초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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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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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남자들의 절망에서 피어나는 웃음꽃

개콘의 ‘남보원’은 그나마 여성들에게 시위라도 하는 용감(?)한 남성들이다. 사진제공 = KBS ‘개그콘서트’
개콘의 ‘남보원’은 그나마 여성들에게 시위라도 하는 용감(?)한 남성들이다. 사진제공 = KBS ‘개그콘서트’


네 시작은 그랬습니다. 저녁시간 뽀글머리에 몸빼바지 차림으로 앉아있는 부인과 얼굴에 세상의 모든 불만을 다 껴안은 듯한 아들을 앞에 두고 나직히 "밥묵자"를 연발하는 아버지.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과 세상의 풍파에 맞서온 강인함으로 무장하고 겉으로는 아들과 부인에게 큰소리도 내지만 속내는 여리디 여린 우리들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웃음의 소재로 쓰이다니요.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세 가족의 침묵은 방청객에게까지 전염되고, 이 무거운 침묵은 잠시 후 관객들의 웃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아… 웃음거리로 전락한 우리들의 아버지!!! 개그콘서트가 말하는 남자들의 몰락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거리로 전락한 남자들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가부장적 권위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는 찾아 보례야 찾아볼 수도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가부장이 어떻고, 아버지가 귀가시간을 어쩌고… 이제 유머일 뿐입니다.

가부장제는 이제 유머 소재일 뿐

데이트 비용을 매번 내야 하는 의무! 여자친구가 화장실을 가면 가방을 들고 기다려야 할 의무! 심야에는 택시로 여자친구를 집 앞까지 모셔(!)드려야 하는 의무!!! 개그콘서트의 '남보원'은 권리는 없고 의무만 남은 남자들의 피해의식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시위를 하던 10년 전과는 반대로, 이제는 머리띠를 두르고 북을 두드리며 주먹을 높이 들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피해의식은 익명성과 만나면 엄청난 폭발성을 띄게 됩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10년 넘게 가장 뜨거운 이슈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군 가산점 이야기입니다. 군 가산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남자들은 키보드가 부서질 정도로 타이핑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여자들도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하지만 남성들의 이 분노의 핵심은 '자신이 군대에 가야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딱히 어디가서 보상받을 수도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의 잃어버린 2년! 남성들은 이 분노를 만만한(?) 여성들에게 분출합니다. 군가산점 논란에서 파생되는 여성부,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개콘은 남성들의 찌질함을 유머의 주된 코드로 삼는다.
개콘은 남성들의 찌질함을 유머의 주된 코드로 삼는다.


하지만 남자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가부장적 권위는 사라졌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지만 가부장의 또 다른 이름인 '남성다움'의 신화는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놈의 남성다움의 신화 때문에 남자들은 자신이 찌질하고, 속 좁고, 힘들고, 나약함을 여자들에게 들킬까 봐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 댔습니다. '남보원'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찔러댑니다.

"우리도 원래 약하고 여린 존재"

누리꾼들 사이에서 강달프로 불리는 강기갑 의원. 외모는 물론 이름마저도 강단 있고 물러설 줄 모르는 남성적 이미지의 강기갑 의원으로 분장한 개그맨 박성호는 그 강단 있는 이미지를 징징거림으로 변환시킵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들의 남성다움은 신화였을 뿐이고 자신들도 힘들고 약한 존재라고. 남성다움의 신화를 스스로 파괴하고 남성들의 초식성을 고백하는 방식이 '남보원'이 갖고 있는 웃음의 미학일 것입니다.

'남보원'에서 보여준 남성들의 분노는 현실의 거대한 벽을 만나면서 '워워워'의 절망으로 이어집니다. 창밖을 보며 희망을 갖자는 철부지 동생에게 형은 "우리집 현실은 반 지하에 창도 제대로 없다"며 충고합니다. 프라모델 만든 것을 자랑하며 과학자가 꿈이라는 동생에게 형은 "인수분해와 방정식을 만나는 순간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절망을 심어줍니다.

절망적 사회에 분노의 가사를 쏟아내던 힙합은 '워워워'에서는 더 이상 전사의 노래가 아닙니다. 단지 '워워워'의 힙합 청년은 현실은 어둡다고 주절주절 되 뇌일 뿐입니다. '남보원'의 동지들은 여성들에게는 머리띠와 북으로 무장하고 목청을 높이기라도 하지만, '워워워'의 힙합청년은 사회현실에 대해서는 혼잣말을 주절거릴 뿐입니다.

개콘의 주된 캐릭터 전쟁은 누가 더 망가진 남성인지를 놓고 벌어진다.
개콘의 주된 캐릭터 전쟁은 누가 더 망가진 남성인지를 놓고 벌어진다.


'워워워'의 유머는 '혼잣말' 바로 여기에 존재합니다. 코 찔찔 흘리는 동생들에게 어른인 척 이야기해봤자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힙합청년의 주절거림은 자기 자신의 절망감을 두껍게 쌓아 올릴 뿐입니다. 어른들에게도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동년배끼리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 소통마저도 포기한 것이며, 소통의 욕구를 기괴한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허망함이 '워워워'의 웃음의 실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힙합청년의 주절거림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슬픈 웃음. 저항은 사라지고 토익과 스펙과 입사시험으로 파편화된 88만원 세대의 자괴감은 슬픈 웃음이 아니고서는 벗어날 길이 없어 보입니다.

현실 앞에 무기력한 88만원 세대

너무 큰 절망의 필연적 결과는 현실도피와 과대망상입니다. 사람들은 절망을 결코 오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거짓을 만들어 그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봉숭아 학당 속의 '행복전도사'는 양극화 시대가 만들어낸 실로 엽기적인 정신분열적 개그입니다.

'행복전도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들 차고에 외제차 세대씩은 있잖아요? 외제차 세대쯤 없으면 그건 차고가 아니잖아요. 그냥 창고지." 이 어이없는 말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다들 표정들이 왜 그래요? 뷔페에 가서 애들이 김밥 먹으려고 하면 비싼 것부터 먹으라고 혼내는 사람들처럼."

행복전도사는 소시민들의 환상을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이라는 말로 충족시키고, 소시민들의 감추고 싶은 일상의 단면들을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라는 말로 폭로 합니다. 환상과 폭로 사이에서 웃음은 터져 나오고, 그래서 우리는 약간 행복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웃음과 행복은 환상이 선행되지 않으면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극적입니다.

누군가 뷔페에서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우리의 행동원칙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아마 얼굴을 붉히며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행복전도사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의 마법에 이미 빠져 환상의 영역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전도사의 말 몇 마디에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회사를 운영하거나, 60평 빌라에 살고 있거나, 1년에 명품시계 하나씩은 사는 사람들이라는 최면에 걸려들었고, 그래서 현실의 찌질함에 대한 폭로를 웃어넘길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쉽게 최면에 걸리는 걸 보면 양극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최면에 걸리기에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개콘의 여성 캐릭터 역시도 사회의 주변부적인 웃음코드에 집착한다는 점.
문제는 개콘의 여성 캐릭터 역시도 사회의 주변부적인 웃음코드에 집착한다는 점.


이런 남성들보다 더 못난 여성 캐릭터들

사족이지만 개그콘서트의 여성캐릭터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개그콘서트에서 여자 개그맨들은 철저히 주변적 인물들로 배치됩니다. 자신의 몸무게와 외모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혀 짧은 소리로 남자친구에게 애정표현을 요구하거나, 긴 다리와 긴 팔을 어이없이 움직이며 춤을 춥니다. 다들 남자 개그맨들의 역할을 보조할 뿐입니다.

그나마 한 꼭지라도 담당하는 것이 사랑을 구걸하러 다니는 박지선입니다. 물론 개그콘서트의 남자들도 망가졌습니다. 권위도 사라지고, 자신들의 찌질함을 들켜버렸고, 거세게 저항 한번도 하지 못하고, 결국 현실도피까지 시도합니다. 하지만 남자들의 망가짐이 유쾌할 수 있는 것은 권위가 무너질 때 나오는 전복적인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분장실의 강선생님'이나 사랑을 구걸하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은 때때로 불쾌감까지 느끼게 합니다. 왜냐하면 전복적 웃음이 아닌 분장에 의한 억지에 의존하거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심각한 왜곡에서 시작하는 그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들 때문입니다.

아 이건 정말 정말 사족인데… 저도 남자랍니다. 초식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육식남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조희제 문화평론가 sira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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