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0억원 재난잔치… 살아남는 게 비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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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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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개봉 ‘2012’

12일 세계 동시 개봉하는 영화 ‘2012’는 2억6000만 달러(약 3100억 원)를 들인 육해공 재난의 총괄모음집이다. 지진 해일 용암분출 산사태 홍수 등 지구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재해가 2시간 37분간 스크린에 펼쳐진다. 건물은 과자처럼 부서지고 5대양 6대주는 뿔뿔이 흩어지며 재구성된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인디펜던스데이’(1996) ‘투모로우’(2004) 등 재난영화를 통해 갈고 닦은 내공을 작심하고 펼쳐 보인다.

영화 제목은 ‘2012년 지구종말설’을 예언한다는 마야인의 달력(2012년 12월 21일에 끝남)에서 착안했다. 인도 과학자로부터 지구에 지각 변동이 진행 중인 걸 알게 된 미국 백악관 과학부 고문 햄슬리(치웨텔 에지오포)는 이를 상부에 보고하고, 대통령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밀 프로젝트를 G8 정상들에게 제안한다. 한편 이혼한 소설가 커티스(존 큐잭)는 아이들과 함께 있던 중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라는 전처의 전화를 받는다.

대규모 물량공세로 몸집을 불린 영화는 입이 쩍 벌어지는 시각적 충격을 준다. 8000제곱피트(약 740m²)에 공기로 띄운 ‘흔들리는 세트’를 짓고 컴퓨터그래픽(CG)에 제작비 절반을 썼다. 그 결과 영화는 과학시간 수업교재로 쓰여도 손색없을 만큼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중반에 이르며 맹점이 드러난다. 재난 현장이 실감날수록 주인공들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과정은 오히려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운전할 줄도 모르는 경비행기를 타고도, 눈 덮인 산에 비행기가 불시착하고도 멀쩡히 살아남는 커티스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심장마비로라도 몇 번은 죽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피할 수 없다. 이혼한 부부의 화해, 서먹해진 아들에게 죽음 직전 전화를 하는 아버지 등 곳곳에 심어놓은 감동 코드도 헐거운 이야기 구조 탓에 빛이 바랬다.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 ‘해운대’와 비교되지만 CG 대신 휴머니즘과 유머를 내세운 ‘해운대’와는 다른 길을 간다.

영화 후반, 종말을 목전에 둔 티베트의 승려가 스승에게 묻는다. “종말이 오면 어쩌죠?” 그러자 스승은 술잔을 채우며 말한다. “이 컵처럼 넌 생각으로 가득 차 있구나. 지혜를 얻으려면 네 컵을 비워야 한다.” 이내 그는 자동차 열쇠를 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클러치 살살 밟아.” 이처럼 지구 종말이라는 거창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복잡한 생각과 치밀한 계산으로 짜인 영화는 아니다. 종말이 닥치면 삼십육계 줄행랑밖에 없다는 승려의 말처럼 쉽고 단순할 뿐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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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영화인


▲자료 제공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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