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리버스 토크] 은근하고 깊은 맛 故 김승호 연기 그리워지네

  • 입력 2009년 9월 1일 0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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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를 그리워하며>

“OOO씨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인가요?”

기자들이 연기자를 처음 인터뷰할 때 으레 한 번쯤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몇 번 거꾸로 나에게 ‘그렇게 묻는 당신이야말로 좋아하는 배우는 누구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김승호죠.”

김승호. 한국영화의 황금기였던 60년대를 대표하는 흥행스타이자 연기파 배우. 어느새 그 역시 원로 배우의 반열에 오른 김희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51살이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46년 데뷔해 죽기 전까지 35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마부’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통해 국제 영화제에 얼굴을 알린 첫 한국 배우였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것은 화려한 필모그래피와 수상 경력 때문이 아니다. 내가 김승호를 좋아하는 것은 어느 작품이든 그의 연기에서는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극에서 현대물, 코미디에서 멜로, 액션물, 전쟁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여러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늘 그가 맡은 인물에서는 짙은 삶의 냄새가 났다. 비록 맡은 역할이 악역이라고 해도.

굳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 새 30여년이 넘은 추억의 스타를 새삼 다시 떠올린 것은 갈수록 보기 민망해지는 안방극장 드라마의 연기를 보면서이다. 드라마가 만화보다 더 황당한 에피소드와 캐릭터들로 시청률 경쟁을 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드라마 내용보다 배우의 연기를 볼 때 더욱 괴로워진다. 특히 내가 짜증나는 대상은 연기 잘한다고 온라인에서 떠들썩하고, 그 스스로도 이른바 ‘한 연기’한다고 자부하는 듯한 일부 배우들이다.

조금만 감정이 격해지면 무조건 고래고래 악을 쓰거나 고함만 지르고, 슬프다면 항상 오만상 찡그리며 눈물만 줄줄 흘린다. 그런 연기를 볼 때마다 감탄보다는 ‘복잡미묘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저렇게 단순화할 수도 있구나’라는 황당함만 든다. 한 배우의 역량을 눈물 연기가 어쩌구, 표정연기가 어쩌구라는 단편적인 잣대로 보면 김승호의 연기는 결코 뛰어나지 않다. 어찌 보면 어눌하기도 한 그의 화법이나 조금 굼떠 보일 정도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은 자칫 ‘발연기’라는 악평을 듣기 딱 좋다.

하지만 마치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처럼 규격화되고 과장된 요즘 안방극장의 ‘명연기(?)를 보다 보면 은근하지만 깊은 맛이 배어나는 김승호의 모습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다.

P.S.=김승호의 대표작으로는 흔히 강대진 감독의 ‘마부’를 많이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같은 감독이 한 해 전 연출한 ‘박서방’이 더 좋다. 특히 처음 본 홍차 때문에 쩔쩔매다 실수한 뒤, 딸의 혼사를 망쳤다고 자책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oldfil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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