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 호텔서 합숙하며 ‘대박’ 사고칠 궁리”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1000만 관객 앞둔 ‘해운대’ 윤제균 감독 - 김휘 작가 - 길영민 제작자 부산 동래중 동기 삼총사

《제작비 130억 원, 국내에서 성공하지 못한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코미디 영화 전문으로 알려졌던 윤제균 감독…. 개봉 전 영화계 일부에서는 ‘해운대’가 ‘영화계의 재앙’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나왔다. 그러나 우려는 깨졌다. 7월 22일 개봉한 ‘해운대’는 16일까지 관객 912만2685명을 끌어들이며 1000만 관객 고지를 눈앞에 뒀다. 18일 만에 900만 명을 넘은 ‘괴물’(2006년)에 이어 두 번째 흥행 속도다. 한 주 늦게 개봉한 ‘국가대표’가 뒷심을 발휘하며 ‘해운대’의 흥행 속도는 한풀 꺾였지만 제작사인 JK필름은 이르면 22일 1000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괴물’ 이후 3년 만의 ‘1000만 영화’가 될 ‘해운대’의 제작 뒷얘기와 궁금한 점, 다른 흥행작들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 봤다.》

말많고… 순하고… 섬세하고
각자 에피소드 수백개 추려
“영역 달라 싸울일 없었죠”

‘부산 사나이’ 세 친구의 26년 의리가 사고를 쳤다.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해운대’.

연출을 맡은 윤제균 감독(40) 뒤에는 시나리오를 쓴 김휘 작가와 제작총괄 담당 길영민 이사가 있다. 1969년생 동갑내기인 셋은 부산 동래중학교 동기생이자 같은 독서실을 오간 사이. 성년이 되어서도 부친상을 당한 뒤 서울을 전전하던 윤 감독에게 길 이사는 거처를 마련해 줬고, 대학을 육수(六修) 끝에 들어간 김 작가에게 둘은 위로의 술을 샀다.

세 사람을 14일 오후 서울 강남의 JK필름 사무실에서 만났다. “회사 간다기보다 친구 만나러 오는 기분으로 출근한다”는 셋은 요즘 사무실에 오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며 웃었다.

“‘차 한잔 할까’ 하면 회의 시작이에요. 그때부터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거죠. ‘해운대’의 시작부터 끝은 우리 셋의 만담 속에서 나온 겁니다.”(김 작가)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 건 2005년 영화 ‘1번가의 기적’을 만들면서부터다. 흥행에 성공한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등이 ‘삼류코미디’로 폄하되자 윤 감독은 ‘두사부필름’을 ‘JK필름’으로 바꿨다. 이때 전시기획자였던 길 이사와 부산에서 작은 영화사를 꾸려 온 김 작가를 불렀다. “촌놈이 뭐 있습니까. 친구밖에 없더군요.”(윤 감독)

윤 감독은 길 이사에게 통장 비밀번호를 비롯한 회사의 살림을 맡겼다. ‘돈을 갖고 도망가도 길 이사의 부모님 댁에서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화에 대한 생각이 같은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김 작가는 윤 감독의 ‘색즉시공’ 초고를 본 뒤 “어디 가서 친구라고 하지 마라, 얼굴 팔린다”고 말했다. 그러던 김 작가가 ‘색즉시공2’의 시나리오를 쓰고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데는 계기가 있었다.

“‘색즉시공’을 보러 갔는데 옆의 여자가 우는 거예요. 경험에 따라 영화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구나 하고 그때 깨달았죠.”(김 작가)

130억 원을 들인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는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투자를 받지 못해 연출부가 해산된 것도 여러 차례. 그러나 셋은 ‘해운대에 지진해일이 닥친다는 상상만으로도 대박감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해운대 골목골목을 실감나게 재현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때부터 부산의 한 호텔에 합숙하며 셋의 머리에서 나온 수백 개의 에피소드를 추려 나가기 시작했다. 시나리오에 반영된 것만 10개 정도. 어촌(부산 기장군) 출신인 김 작가는 만식과 동춘을 중심으로 한 상가 번영회 사람 이야기를, 윤 감독과 길 이사는 해운대 피서객과 김휘 이유진 부부의 에피소드를 맡았다. 김 작가의 이름은 극중 김휘 박사에게 응용됐다.

“각자 영역이 있으니 싸울 일이 없죠. 성격도 제각각이에요. 길 이사는 섬세하고, 김 작가는 순하고, 나는 말 많고…. 예전에 나이트클럽에 가면 여자에게 인기 많은 건 길 이사고, 김 작가는 숙맥이었고, 난 ‘폭탄 제거반’이었다니까.(웃음)”(윤 감독)

‘갈매기가 차에 박히고 컨테이너가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등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도 많은데…’ 하고 쿡 찔러 보았다. 윤 감독은 솔직하게 말했다. “할리우드와 규모로 겨루기는 예산도 시간도 부족했죠. 간단한 아이디어로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뻔한 장면들도 들어가게 됩디다.”

앞으로도 ‘배신만 안 때리면’ 세 콤비는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갈 생각이다. 김 작가는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고, 윤 감독은 차기작으로 SF 호러 ‘제7광구’와 가족 판타지 ‘템플스테이’를 저울질하고 있다. 석유시추선에 괴(怪)생명체가 나타난다는 내용의 ‘제7광구’는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영어 대사로 제작될 예정이다. 만만치 않은 ‘대작 프로젝트’지만 윤 감독의 고민은 따로 있다.

“얼마 전 이 친구랑 공포영화 보러 갔는데요, 소리를 어찌나 지르던지.”(김 작가) “그래 갖고 니가 공포영화를 만들 수 있겠나. 치아라, 마.”(길 이사) 그러자 윤 감독의 한마디. “누가 나한테 ‘윤제균은 공포영화 만들면 안 됩니다’라고 얘기하겠노. 두고 보자 마.”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있다-없다’로 풀어본 ‘해운대’

▽개봉 전 해운대 집값이 떨어진다는 루머가 있다=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가 해운대 관광객이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봉 직전 예고편이 나가자 해운대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당황한 윤 감독은 해운대 주변 아파트 주민대표 모임에 참석해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설득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피해를 본 주민들은 “아이들이 학교가면 ‘지진해일 나면 너희 집 먼저 떠내려간다’고 놀려 괴롭다”며 항의했다고 한다.

▽지진해일로 떠내려가는 자동차 중에는 윤제균 감독의 차가 있다=수백 명의 인파가 달맞이고개 위를 뛰어가는 장면에는 윤 감독의 눈물겨운 희생이 있었다. 둥둥 떠내려가는 자동차를 찍기 위해 제작진은 폐차 스무 대를 섭외했다. 그러나 1990년대 고물차만 등장할 순 없는 일. 윤 감독은 자신의 검은색 중형차 열쇠를 제작진에게 내줬다. 그러자 좋은 차를 갖고 있던 제작진이 하나 둘 ‘자진납세’를 시작했다. 차번호가 ‘1799’인 윤 감독의 중형차는 광안대교 달맞이고개 등 다양한 장소에 활용됐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컨테이너 장면은 원래 대본에 없다=동춘이 광안대교 위에서 마구 떨어지는 컨테이너를 요리 조리 피하는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 윤 감독은 한 장면에 1억 원이 드는 지진해일 CG보다 효과가 클 아이디어를 고민하다 이 컨테이너 장면을 넣기로 했다.

그러나 동춘 역을 맡은 김인권 씨에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김 씨는 “갑자기 콘티를 주며 아무것도 없는 광안대교 위에서 연기를 하라고 하더라”며 “편집하겠지라는 생각에 그냥 미친 척 뛰어다녔다”고 회상했다.

▽시계 풀어주고 바다로 떨어지는 형식의 손목에는 시계가 있다=해양구조대원 형식이 희미에게 손목시계를 선물한 뒤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 형식의 손목을 들여다보면 주황색 손목시계가 버젓이 채워져 있다. 희미에게 시계를 줬다 뺏은 것일까. 아니다. 손목시계를 풀어주는 장면보다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을 먼저 찍었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한 것.

제작진은 “기자시사회 때에야 알게 됐다. 집단적으로 눈에 뭔가 씐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로 수출되는 필름과 DVD 버전에는 형식의 시계가 지워진 채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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