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리버스 토크] 국적불명 예능 자막, 기가 막혀

  • 입력 2009년 7월 7일 07시 36분


“자 여러분, 오늘 기라성같은 가수들이 함께 했습니다.”

게스트들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인기 높은 지상파TV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날 출연자를 소개하는 진행자의 멘트다. TV 화면에는 늘 그렇듯 멋진 글씨체로 ‘기라성 같은 스타!!’란 자막이 등장했다

그런데, ‘기라성’이라니…. 굳이 한자로 옮기면 ‘기라성’(綺羅星)라고 쓸 수 있는 이 단어는 우리말이 아니다. 또한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에서 쓰기 적합한 말은 더욱 아니다.

기라성은 ‘반짝 반짝’이란 의미인 일본말 ‘기라키라’(きらきら)의 ‘기라’에 별을 뜻하는 ‘성’(星)을 붙여 만들어진 조어다. ‘반짝이는 별’이란 뜻의 ‘기라 호시’(きら 星)를 두 말이 붙은 단어 ‘기라보시’로 잘못 알면서 파생됐다는 추측도 있다.

여하튼 외국어나 외래어도 아니고, 한자어도 아닌 국적불명의 단어로 우리말에서는 ‘뛰어난’ ‘대단한’ 또는 ‘반짝이는 별 같은’이란 표현으로 바꾸어 쓰는 게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런 단어가 버젓이 주말 밤에 TV를 통해 등장했다.

지난 주말 방송된 다른 지상파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역시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송하는 인기 프로그램에서 이번에는 ‘육사시미’라는 말이 자막으로 등장했다.

출연진 중 한 명이 육회를 주문하면서 무심결에 “육사시미 주세요”라고 했는데, 이를 그대로 자막으로 옮긴 것이다. 방송 이후 시청자의 지적이 쏟아지자 프로그램 제작진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자신들의 부주의함에 대해 사과를 했다.

이들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는 두 방송사에 이런 표현이 자막에 부적절한 것을 알고 바로잡을 사람이 전혀 없었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두 방송사 모두 우리 말 바로 쓰기를 거의 연중 캠페인으로 펼치는 아나운서실을 비롯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을 수 있는 충분한 인력과 조직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그런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 올바른 자막을 방송에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은 ‘재미의 반’이라고 한다. 그만큼 완성도와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럼 그런 중요성에 걸맞게 정성을 기울인다고 해서 제작에 해가 되진 않을 텐데…. 과연 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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