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손예진 눈웃음 한방이 글 대신” 정 “원작 벗어날까봐 표정 신경”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8분


“사랑에 가슴 앓는 이에게 ‘잊으라’는 조언만큼 쓸모없는 게 있을까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정윤수 감독(왼쪽)과 원작자 박현욱 씨는 “가슴앓이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사랑에 가슴 앓는 이에게 ‘잊으라’는 조언만큼 쓸모없는 게 있을까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정윤수 감독(왼쪽)과 원작자 박현욱 씨는 “가슴앓이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아내가 결혼했다’ 책 쓴 박현욱 작가-영화로 만든 정윤수 감독 한자리에

“폴리아모리(polyamory), 한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고 동시에 여러 사람과 연애하는 것? 너무 거창하네요.(웃음) 그냥 사랑의 불공평함에 대한 얘기예요. 사랑은 똑같이 주고받는 게 아니라는 거죠. 사랑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 누군가를 더 많이 아프게 사랑해 본 사람이 잘 이해할 영화일 겁니다.”

23일 개봉하는 ‘아내가 결혼했다’(18세 이상 관람가)를 각색하고 연출한 정윤수(46) 감독의 말이다.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덕훈(김주혁)은 집요한 프러포즈 끝에 사랑하는 인아(손예진)와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며 살아온 인아는 “좋아하는 사람이 또 생겼다”며 “그 사람과도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배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특이한 소재의 로맨스 영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한다는 파격적 설정을 축구 이야기와 버무려 그려낸 동명 원작소설은 2006년 출간 이후 25만 부 넘게 팔렸다. 이 소설을 쓴 박현욱(41) 작가와 정 감독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작가=영화 시사회에서 자아 분열을 경험했습니다. 관객으로서는 ‘더 재미있게 바꾸지 그랬나’ 아쉬워하고, 원작자로서는 ‘아, 저걸 저렇게 바꾸다니’ 속상해하고. 영화 보며 앉아 있기가 그렇게 힘든 건 처음이었어요.

▽감독=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어떤 부분이 거슬리던가요.

▽작가=영화가 나빴다는 얘기는 아니에요.(웃음) 표현 방법 차이에 따른 아쉬움이죠. 소설은 독자를 상상하게 만들지만, 영화는 상상을 제한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세 주인공이 함께 외국으로 떠나는 상상을 하는) 열린 결말의 소설과 달리 영화는 ‘세 부부’가 함께 외국에서 축구 응원 가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잖아요. 실현된 이미지는 상상의 기대치에 미치기 어렵죠.

▽감독=사람들은 소설책을 사기 전에 서점에서 미리 어느 정도 들춰 보잖아요. 하지만 영화 관객은 그럴 수 없으니 감독은 작가보다 친절해야 해요. 인아가 특히 많이 바뀐 것도 그 때문이에요. 원작에서는 성숙한 섹시함을 풍기는 이지적인 스타일이죠. 하지만 영화에서는 애교 많은, 어리고 감성적인 여인이 됐어요.

▽작가=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를 읽히게 하려면 인아 캐릭터가 중요했어요. 어떤 경우에도 남자가 버릴 수 없는,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 독자에게 그렇게 납득시키려고 온갖 공을 들였죠. 그런데 영화에서는 손예진 씨 눈웃음 한 방으로 해결되더라고요. 좀 억울한 느낌이랄까. 영화 만드는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웃음)

▽감독=살다보면 말보다 몸짓 하나로 다툼이 풀리는 일이 많잖아요. 손예진 씨가 그런 표현 잘해줘서 다행이지…. 소설에 비해 설득력이 약해질까 봐 부담이 컸던 부분이에요.

▽작가=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를 써도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상처를 받는데요. ‘대부’(1972년) 원작자인 마리오 푸조도 19세 연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한테 서운했던 심정을 자기 책에 ‘주저리주저리’ 썼잖아요. 제작사의 각색 제안을 망설임 없이 거절했는데 잘한 일 같아요.

▽감독=시나리오 작가의 바람은 시나리오에서 끝이죠. 감독도 마찬가지예요. 욕심에 사로잡히면 안 돼요. 배우와 아무리 오래 대화해도 연기는 결국 배우가 잘하는 방식으로 나오거든요. 서로 자기 몫을 인정해야 영화가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작가=인아가 손예진 씨 눈웃음 속에 갇혀 버렸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손예진 씨 웃음을 얻었다는 생각도 해 봐야겠네요.(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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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했기에?”… ‘18세 이상’ 등급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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