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몰아가는 방향으로 오역”

  • 입력 2008년 7월 18일 02시 53분


■ 방통심의위 결정문으로 본 ‘PD수첩’ 문제점

객관성 위반 “광우병 걸린소” 불명확한 내용 단정 보도

공정성 위반 美소비자연맹 등 일방적 인터뷰만 방송

오보정정 위반 오류 알고도 첫방송 두달 지나 정정보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16일 전체회의에서 MBC PD수첩의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1, 2’(4월 29일, 5월 13일 방송)에 대해 중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 결정을 내렸다. 》

방통심의위가 MBC PD수첩에 대해 내린 ‘심의결정문’은 ‘법원의 판결문’과 비슷한 것으로, 앞으로 PD수첩에 대한 재판과 검찰 수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방통심의위원들이 16일 의견진술 과정에서 제작진에게 지적한 내용과 결정문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 오역으로 사실을 오인케 함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은 의견진술 과정에서 “PD수첩이 번역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하지만 오역이 굉장히 특수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역이 미국 소는 광우병 소, 아레사 빈슨은 광우병으로 죽었다는 방향으로 오역이 이뤄졌다”며 “오역이 바로잡혔다면 어땠을까”라고 말했다.

방통심의위는 결정문에서 PD수첩이 영어 인터뷰에 대한 6가지 오역으로 사실을 오인하게 한 점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 제3항 및 제14조(객관성)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영어 오역은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 동영상과 빈슨의 사인과 관련된 장면에서 집중됐다(표 참조).

○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로 오해하게 함

박정호 위원은 “1편에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해서 발병 확률이 94%에 이른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의학협회 등에서 논란이 많다”며 “앞에서 광우병과 관련된 충격적 분위기를 만들고 뒤에는 한국인이 위험하다고 해 쇠고기 협상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는 PD수첩이 인간광우병 발병 환자의 프리온 유전자형을 분석한 근거만을 가지고 “한국인의 인간광우병 발병 확률이 94%”라고 언급한 것도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해 ‘객관성’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

○ 특정 견해를 가진 관계자만 인터뷰

손태규 위원은 이날 PD수첩이 취재 과정에서 불균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손 위원은 “1편에서 도축실태를 보도하면서 휴메인 소사이어티 관계자가 ‘광우병 위험이 크다’고 하는 인터뷰가 나오는데 미국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의 반론이 없었다. 미국소비자연맹 마이클 핸슨의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80초 정도 나오는데 국제수역사무국(OIE)에 관한 얘기는 39초에 불과했다. 또 국내에서 정부를 옹호하는 쪽은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 한 명만 나왔지만 반대하는 쪽은 수의사, 전직 장관, 변호사 등이 나왔다. 캐나다 소 수입 문제도 광우병으로 문제 있다는 사람은 세 명이 나와 1분 이상 비판하는데 왜 수입업자 등의 의견은 하나도 없었나”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방통심의위는 PD수첩이 미국의 도축시스템, 도축장 실태, 캐나다 소 수입, 사료통제 정책 등에 대해 미국소비자연맹이나 휴메인 소사이어티 관계자의 인터뷰만 일방적으로 방송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정부 측은 협상대표 한 사람만 인터뷰한 뒤 협상에 반대하는 각 단체 대표 및 전문가 등의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점 등이 ‘공정성’ 심의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결정했다.

○ 오보에 대한 뒤늦은 정정

박 위원장은 MBC 제작진에게 “방송심의규정에 왜 ‘오보는 지체 없이 정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겠는가. 보도의 영향력은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때문”이라며 “4월 29일 방송하고 2주 뒤에 일부 해명하고, 두 달이 넘어서 오류를 정정한 것이 과연 신속하고 지체 없는 정정이었나”라고 물었다.

방통심의위는 결정문에서 PD수첩이 5월 13일 일부 오보를 해명했지만, 지체 없이 정정 방송을 하지 않은 것은 방송심의규정 제17조(오보 정정)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상파 시사프로론 이례적 중징계

방송사 재허가 심사때 감점 받게돼

■ ‘시청자에 사과’ 조치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MBC PD수첩에 내린 ‘시청자에 대한 사과’ 조치는 방송법에 규정된 중징계다.

방송법에 규정된 법정 제재는 △해당 프로그램의 정정 수정 또는 중지 △방송편성 책임자·해당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주의 또는 경고 등이 있다. 주의나 경고는 ‘시청자 사과’ 등에 비해 낮은 등급의 제재다. ‘시청자 사과’와 ‘관계자 징계 조치’를 함께 받는 경우도 있다. 제재를 받으면 방송을 통해 시청자에게 제재 사실을 알려야 한다.

법정 제재를 받으면 3년마다 시행되는 방송사 재허가 때 감점 요인이 되는데 ‘시청자 사과’는 4점이 깎인다.

지상파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중징계는 이례적인 사안으로 PD수첩의 잘못이 위중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알몸 초밥’을 방송한 ETN의 ‘백만장자의 쇼핑백’ 등 케이블 TV채널에 대해 ‘선정성’ 등을 이유로 중징계가 내려진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지상파에 대해서는 지난해 1월 기독교 대전 FM 라디오 ‘시사포커스’에 ‘시청자에 대한 사과’와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제재가 내려진 바 있다.

방통심의위는 제재를 의결한 뒤 방송통신위원회에 지체 없이 제재 조치의 처분을 요청하고 방통위는 해당 사업자 등에 제재 조치의 처분을 명령해야 한다. 방송사는 제재 조치 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방통위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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