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밥 한그릇에 소주 한병… 바로 한국의 맛 아니겠어”

  • 입력 2008년 6월 24일 03시 01분


SBS 월화드라마 ‘식객’ 오 숙수 역 최불암

“신선로 맛있다는 사람 누군지 한번 데려와 봐.”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카페. SBS 새 월화드라마 ‘식객’에서 ‘오 숙수’ 역을 맡은 최불암(68)의 말이다. 조선 궁중요리사 대령숙수의 맥을 이은 극중 역할과는 입맛이 반대다.

“(나는) 육개장, 감자탕, 설렁탕 이런 것들 좋아하지. 다 옛날 사대문 밖에서 먹던 음식들이야. 장돌뱅이나 먹던 것이지. ‘가족력’이 있어서 그런지 언제 먹어도 맛있어. 난 뭐…, 이런 것을 떠날 수가 없어.”

그의 모친은 1950, 60년대 당대의 문인 화가 연극인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서울 명동의 대폿집 ‘은성’을 운영했다. 그의 입맛이 서민적인 것도 당연하다.

“어머니는 김치에 생선 넣는 것을 잘하셨지. 조기, 명태, 낙지 같은 것들. 영양 때문에 김치 사이에 한 조각씩 넣은 건데, 기가 막히지. 막 장독에서 내와 썰어 먹으면 입 안에 바다가 들어온 것 같았어. 양념하고 함께 숙성 발효가 돼 가지고 생선 비린내는 없어지고 생선의 맛이 살아나는 거야. 이런 한국 음식 먹을 줄 모르는 놈은 한국사람 아냐.”

맛의 표현이 극중 오 숙수의 대사만큼 생생하다. 40년 연기 인생 내내 한국인의 남성상을 모색했다는 그. ‘한국적’이라는 모호한 수사도 그가 말하자 손에 잡힐 듯하다.

“친구하고 둘이서 점심으로 순댓국밥 한 그릇에 4000원, 소주 한 병에 2000원, 1만 원짜리 한 장 가지고 먹어도 그렇게 행복할 수 없는 거야. 그게 한국인이야. 질박한 뚝배기의 냄새 말이야. 요즘 젊은 애들 보면 미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모르겠어. 머리도 노랗게 하고. 우리 개성을 발전시키면 세계에서도 최고의 환영을 받을 텐데 말이야. 드라마 ‘식객’도 우리 음식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킨다는 의미가 있어.”

그는 주변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곤쟁이젓의 진한 맛이 그립다고 한다. 사라지고 변한 것이 음식뿐일까. ‘전원일기’가 폐지될 때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방송의 본질은 변해 가는데 늙은 배우는 힘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음에는 멜로를 해보고 싶어. 멜로를 못해봤거든. 요즘 드라마는 너무 젊은 사람들 얘기에 편중돼 있어. 노인네들 나오면 화면 지저분해진다고 젊고 예쁜 사람들만 나오는데 그러면 안돼. 얼마 전에 연극을 봤지. 폐품 수집하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우유 배달 할아버지 얘기야. 죽음을 알리지 않아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죽은 줄도 모르고 그리워해. 나중에는 다 죽어. 사랑에 묻혀 죽는 거지. 아름답더라고. 그런 작품 해보고 싶어.”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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