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냄새’나는 서른일곱 황정민과의 솔직 ‘맨발토크’

  • 입력 2007년 6월 20일 2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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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동아일보 자료사진
황정민. 동아일보 자료사진
약속 장소인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 들어서니 그냥 아저씨 한 명이 앉아 있었다. 티셔츠에 청바지, 화장기 없는 검은 얼굴까지는 봐줄만 했다. 그런데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니 참 난감하다. '된장 냄새'를 막을 래야 막을 수 없는 서른일곱의 배우 황정민. 21일 개봉하는 영화 '검은집'은 그가 연기생활 10여년 만에 처음 도전하는 공포물이란다. 신비감이 없어도 마치 "황정민만은 봐준다"는 식의 암묵적 동의가 형성됐다고 할까? 황정민과 솔직하게 나눈 '맨발 토크'.

"에휴, 투박하고 촌스러워야 황정민이죠. 그런 피를 타고 났는데 뭐 노력한다고 바뀌나요? 전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집에서 가장이 쓰레기 분리수거도 못하고 동사무소 가서 서류 떼 오는 것도 낯설고 그렇다고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너무 완벽한 것 보다 면박 받고 머리 긁적이면서 사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그래서 영화 한 편 찍고 개봉을 기다리는 심정은 솔직히 어떤가요?

"진짜로요, 늘 '아무렇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식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매번 흥행에 초월한 황정민과 전전긍긍하는 황정민이 머리 속에서 계속 싸워요. 만화 보면 천사와 악마가 서로 싸우듯… '검은집'은 첫 공포 영화라 더 해요."

-갑자기 지난해 영화제 수상 소감이 생각나는데 이번에도 '스탭들 차려놓은 밥상'을 먹기만 했나요?

"전 늘 그렇죠. 스탭 분들 중에 누구 한 명이라도 삐끗하면 영화가 제대로 나오기 힘들죠. 그래서 전 영화 한 편 한 편 출연할 때마다 행복해요. 열심히 하는 이유는 존재감 때문이에요. 배우는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 있을 때만이 배우니까요."

그는 몇 년 전 '싸이코패스'(범행자체를 즐기는 정신질환자)를 다룬 기시 유스케의 원작소설을 읽었는데 지난해 이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후 자신에게 출연 제의가 왔다고 한다. 그는 "보험회사 직원 '전준오' 역을 맡은 게 운명 같다"고 말했다.

"저 혼자 주연은 처음이에요. 부담됐다면 안 했겠지만 그보다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다만 관객들이 전준오를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보험관계자를 만났는데 남편이 자는 동안 눈에 독극물을 넣어서 보험금을 타낸 아내가 있었대요. 이런 일들이 일상이라고 하니 놀랍지 않으세요?"

-그럼 영화의 주제가 '싸이코패스를 이해하자'가 되는 건가요?

"저는 이 소설이 왜 나왔으며 영화가 하필 2007년에 만들어졌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조승희 사건'만 봐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 분명 우리 이웃들과 함께 지냈잖아요. 누구나 그런 사람들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 사회가 이를 보듬어 안아야죠."

-혹 황정민 씨에게도 그런 포악함이나 이중성이 있나요?

"그럼요. 전 신기한 게 단체로 밥 먹을 때 음식을 통일해 시켜먹자고 할 때 화가 나요. 또 누가 음식을 던지듯 놓으면 전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지적해야 직성이 풀려요. 개중에는 저보다 덩치가 큰 사람이 있긴 한데 뭐, 죽기보다 더 하겠어요?


21일 개봉하는 영화 '검은집'은 '싸이코패스'(감정이 없는 인간)를 다룬 공포물. 보험회사 직원 '전준오' 역을 맡은 황정민은 연기인생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공포물에 도전했다. 영상제공 래핑보아

'너는 내 운명'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생결단' 등 연속 흥행을 이어온 그이지만 '검은집'의 흥행에 대해서는 특히 신경이 쓰인단다. '스파이더맨3' 이후 7주 째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영화를 누르고 있는 상황이니. 그러나 그는 "한국영화라서 외면 받는 것이 아니라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며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있겠냐"며 웃는다. 여전히 투박하다.

"이제 저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네요. 고등학교 때는 40만 되면 천하무적 배우가 될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목표를 쉰으로 연장할까봐요. 다만 배우라는 직업은 편법이나 권모술수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거짓 없이 솔직하게 연기해야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전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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