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 투박하고 촌스러워야 황정민이죠. 그런 피를 타고 났는데 뭐 노력한다고 바뀌나요? 전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집에서 가장이 쓰레기 분리수거도 못하고 동사무소 가서 서류 떼 오는 것도 낯설고 그렇다고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너무 완벽한 것 보다 면박 받고 머리 긁적이면서 사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그래서 영화 한 편 찍고 개봉을 기다리는 심정은 솔직히 어떤가요?
"진짜로요, 늘 '아무렇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식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매번 흥행에 초월한 황정민과 전전긍긍하는 황정민이 머리 속에서 계속 싸워요. 만화 보면 천사와 악마가 서로 싸우듯… '검은집'은 첫 공포 영화라 더 해요."
-갑자기 지난해 영화제 수상 소감이 생각나는데 이번에도 '스탭들 차려놓은 밥상'을 먹기만 했나요?
"전 늘 그렇죠. 스탭 분들 중에 누구 한 명이라도 삐끗하면 영화가 제대로 나오기 힘들죠. 그래서 전 영화 한 편 한 편 출연할 때마다 행복해요. 열심히 하는 이유는 존재감 때문이에요. 배우는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 있을 때만이 배우니까요."
그는 몇 년 전 '싸이코패스'(범행자체를 즐기는 정신질환자)를 다룬 기시 유스케의 원작소설을 읽었는데 지난해 이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후 자신에게 출연 제의가 왔다고 한다. 그는 "보험회사 직원 '전준오' 역을 맡은 게 운명 같다"고 말했다.
"저 혼자 주연은 처음이에요. 부담됐다면 안 했겠지만 그보다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다만 관객들이 전준오를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보험관계자를 만났는데 남편이 자는 동안 눈에 독극물을 넣어서 보험금을 타낸 아내가 있었대요. 이런 일들이 일상이라고 하니 놀랍지 않으세요?"
-그럼 영화의 주제가 '싸이코패스를 이해하자'가 되는 건가요?
"저는 이 소설이 왜 나왔으며 영화가 하필 2007년에 만들어졌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조승희 사건'만 봐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 분명 우리 이웃들과 함께 지냈잖아요. 누구나 그런 사람들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 사회가 이를 보듬어 안아야죠."
-혹 황정민 씨에게도 그런 포악함이나 이중성이 있나요?
"그럼요. 전 신기한 게 단체로 밥 먹을 때 음식을 통일해 시켜먹자고 할 때 화가 나요. 또 누가 음식을 던지듯 놓으면 전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지적해야 직성이 풀려요. 개중에는 저보다 덩치가 큰 사람이 있긴 한데 뭐, 죽기보다 더 하겠어요?
'너는 내 운명'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생결단' 등 연속 흥행을 이어온 그이지만 '검은집'의 흥행에 대해서는 특히 신경이 쓰인단다. '스파이더맨3' 이후 7주 째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영화를 누르고 있는 상황이니. 그러나 그는 "한국영화라서 외면 받는 것이 아니라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며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있겠냐"며 웃는다. 여전히 투박하다.
"이제 저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네요. 고등학교 때는 40만 되면 천하무적 배우가 될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목표를 쉰으로 연장할까봐요. 다만 배우라는 직업은 편법이나 권모술수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거짓 없이 솔직하게 연기해야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전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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