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에서 ‘일본인 처’로 산다는 것

  • 입력 2007년 3월 1일 11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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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1절이 되면 위안부 할머니,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반복된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분명 잊지 말아야 할 일이고 꼭 바로잡아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등잔밑이 어둡다고 정작 우리는 남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준 적이 없는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오는 3일밤 잊혀지고 버려진 ‘일본인 처’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일본인 처’는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인과 결혼해 살다가 광복과 함께 한국에 정주하게 된 일본여자들을 일컫는 말. 이들은 한국 남자가 좋아서 결혼했지만, 광복 이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게 된다.

한국땅에서는 가해자라는 이유로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해 결혼생활을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었고, 친정인 일본에서는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왔지만 남편의 본처가 있는 경우도 있었고 집안의 반대로 호적에 올리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하루아침에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이방인이 되어 한국 사회에서의 삶을 시작한 이들. 과연 60여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또 무슨 생각을 갖고 여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제작진은 ▲15살 되던 해 한국남자와 결혼했으나 6·25 전쟁으로 남편과 생이별한 이케다 교코 할머니 ▲일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한국으로 와 보니 남편에게 본 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나마 하루나 할머니 ▲ 남편 하나만을 믿고 현해탄을 건넜지만 남편의 외도와 폭력에 못이겨 2살난 아들을 둔 채 야반도주를 택했던 아카타 할머니의 사연을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동댕이 쳐진 ‘일본인 처’의 문제를 조명한다.

제작진은 “아직도 국민들 사이에서 반일 감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해국 출신의 소수자 인권까지 다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도 보듯 이제는 우리의 지나친‘자민족 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일본인 처’ 문제는 매우 상징적인 ‘왜곡된 민족주의’의 사례이며, 우리의 강한 자민족주의의 얼굴을 되비춰주는 거울이라는 것이 제작진의 생각이다.

오는 3일 방송될 ‘그것이 알고싶다-아카타 할머니의 세가지 소원’편은 여든을 넘겨 여생을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은 ‘일본인 처’들이 생전에 그 고통의 매듭을 풀 수 있을지, 이 할머니들이 지나온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볼 계기가 될 것 같다.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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