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철 감독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좋은 가족 이야기죠”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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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구 기자
이훈구 기자
■ 영화 ‘좋지 아니한가’ 정윤철 감독

“전작과 비교해서 부담 갖지는 않아요. 어차피 영화는 태어나는 순간 자기 힘으로 달리는 거니까.”

데뷔작 ‘말아톤’으로 관객 500만 명 흥행 기록을 세운 감독다운 대답이다. 큰 영화 연출 제의가 쏟아졌을 텐데, 정윤철(36·사진) 감독이 선택한 작품은 제작비 22억 원의 작지만 알찬 영화 ‘좋지 아니한가’(1일 개봉, 15세 이상)였다.

서로 무관심하게, 덤덤하게 살아가는 심 씨네 가족 이야기. ‘고개 숙인’ 소심한 아빠(천호진)와 말끝마다 욕을 하는 엄마(문희경), ‘우주에서 가장 나쁜 ×’인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아들(유아인)과 ‘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같은 집에 모여 사는지’ 궁금한 딸(황보라), 여기에 노처녀 백수 무협작가인 이모(김혜수)가 함께 산다. 모래알같이 따로따로 놀던 이 가족에게, 어느 날 뜻밖의 위기가 닥친다.

영화는 다섯 명의 독특한 인물이 극을 이끌어 나가는 캐릭터 드라마로, 시니컬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대사가 일품이다. 심인성 발기 불능인 아빠가 잠자리에서 자꾸 건드리는 엄마에게 던지는 말 “좀 덤덤하게 살자”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

“서로 너무 ‘올인(다걸기)’하지 말자는 거죠. 끊임없이 이해하고 이해시키려 하고, 이해 안 된다고 고치려 들고 그런 가운데 갈등만 더 커지거든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할 수 있나요?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데.”

그래서 영화에는 ‘달의 뒷면’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달은 자전하면서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데 자전과 공전의 주기가 같아 지구에서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 지구와 달은 가장 가까우면서 그 이면을 모르는 존재. 가족도 마찬가지다. 다 좋은데, 그게 쉬운가?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찍으면서 저도 좀 그렇게 돼 보려고 했죠.”

심 씨 가족들은 ‘×팔려서 죽을 것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도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따지지 않는다. 흔히 사람들은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하고 한탄하지만, 원래 그런 게 세상이라고 정 감독은 생각한다.

전작에서 관객의 감정을 감독의 계산대로 정확하게 유도하는 꼼꼼한 연출로 ‘테크니션’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원래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고3 때 갑자기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아버지는 그런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아버지와 그것 때문에 갈등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그래, 아버지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인정하죠. 다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이런 태도, ‘좋지 아니한가’요?”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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