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사 다큐프로 요즘 왜 이러나… 性-폭력소재 넘쳐

  • 입력 200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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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중년 여성(‘추적60분’), 말을 중간에 끊었다며 할머니에게 발길질해 대는 초등학생 손녀(‘PD수첩’), 목을 조르는 아버지에게 칼을 휘두르는 10대 여학생(‘그것이 알고 싶다’)…. 요즘 지상파 3사의 간판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은 이렇게 엽기적인 사건들을 많이 다룬다. 선정적인 사진과 함께 사건 사고나 스캔들을 주로 보도하는 타블로이드(tabloid) 저널리즘과 닮은꼴이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윤호진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 ‘PD 저널리즘의 성과와 과제’에서 KBS ‘추적60분’과 MBC ‘PD수첩’은 소재와 화면 전개 방식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청률을 의식한 연성 소재로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3, 4월 3개 프로그램이 내보낸 방송들은 여전히 이 같은 지적에서 비켜 가기 힘든 것으로 분석됐다. 정치, 경제 등의 사회적 이슈보다는 사건 사고를 자극적으로 다룬 방송이 주를 이뤘다.》

▽선정적 소재=‘추적60분’은 최근 두 달간 ‘성인 오락실, 대한민국을 점령하다’ ‘여성 알코올중독 실태보고, 키친 드렁커를 아십니까’ ‘화성 연쇄살인사건 D-11, 마지막 공개 수배’ ‘중학생 자살, 휴대전화 요금 370만 원의 비밀’ 등 8건의 방송을 내보냈다. 3·1절 기획 ‘어느 독립유공자 후손의 항변’을 제외하면 주요 소재가 사건이나 범죄물이었다. 26일은 ‘2006 용역실태 보고, 폭력을 서비스해 드립니다’를 방송할 예정이다.

‘PD수첩’은 같은 기간 7건을 보도했다. 서해 유전 의혹을 다룬 2건을 제외하면 ‘충격보고 성매매 수출국 코리아’ 1, 2부와 ‘남편 살해 여성의 고백’ ‘못된 아이 매인가 치료인가’ ‘죽어도 좋아, 운동 중독’ 등 ‘추적60분’과 소재의 성격이 다르지 않다.

SBS ‘그것이…’가 다룬 7건의 주제도 ‘트레일러 뺑소니 사건의 미스터리’ ‘조용한 가족’ ‘10대 동성애’ ‘연쇄 성폭행범’ 등 성과 폭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29일은 학교 폭력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로버트 엔트먼 교수는 이처럼 범죄, 사고, 화재, 스캔들을 다루는 보도를 전통적인 저널리즘과 구분해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이라고 분류했다. 전통 저널리즘이란 정부의 주요 정책을 다루거나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으로 미국에서는 메이저 신문과 CBS 같은 네트워크 방송사가 담당한다. 반면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은 시청률에 신경 쓰는 소규모 지역 방송사의 몫이며 그 기능이 뉴스보다는 오락에 가깝다는 것이다.

▽자극적 화면=‘PD수첩’은 11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문제를 다루면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상을 번쩍 들어 휘두르며 어머니를 위협하는 10세 소녀의 모습을 장시간 내보냈다.

3월 28일 폭행을 일삼는 남편을 살해한 여성 재소자의 사연을 다룬 방송에서는 아버지를 여읜 10대 남매와의 인터뷰가 나갔다. 아들은 “(아버지가) 없는 게 훨씬 좋은데요”라고 했고, 딸은 살해 당시 상황에 대해 “아빠가 술 마시고 정신이 나가니까 넘어져서 (엄마가) 목 한번 조르니까 꾀꼬닥 한 거지 뭐” 했다. 살해당한 남편이 딸을 강제로 성추행한 사실을 보도할 때는 추행장면을 묘사한 문구를 자세히 비췄다.

‘추적60분’은 19일 여성 알코올중독 문제를 다루면서 30대 주부가 취재진의 카메라를 밀치며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요” 하고 주정하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했다.

‘그것이…’는 대화가 부족한 가족의 문제를 다룬 4월 8일 방송에서 TV를 가까이서 보지 말라고 나무라는 어머니에게 “TV 보는데 왜 지랄이야” “저리 꺼져”라고 악쓰며 이불로 엄마를 치는 10대 소녀의 모습을 내보냈다.

▽제작진의 해명=‘PD수첩’ 최승호 책임 프로듀서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자극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화면이 나가는 경우가 있지만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라며 프로그램이 선정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것이…’의 정병욱 책임 프로듀서도 “생활 밀착형 소재가 반응이 좋아 많이 다루는 것”이라며 “정치적인 소재는 공정하게 하지 않는다면 피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적60분’을 담당하는 김규태 시사정보팀장은 “제작진도 사회적 의제설정 기능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권력에 대한 감시를 하는 아이템을 보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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