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박수칠 때 떠나라’… 영화속 죄와 벌

  • 입력 2005년 8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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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의 죄와 벌은 법이 아닌 금자가 스스로 정한다. 법의 역할은 무시된다(왼쪽).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검찰의 수사는 방송에 생중계되는 쇼가 되고 법의 근엄함은 웃음거리가 된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필름잇수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의 죄와 벌은 법이 아닌 금자가 스스로 정한다. 법의 역할은 무시된다(왼쪽).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검찰의 수사는 방송에 생중계되는 쇼가 되고 법의 근엄함은 웃음거리가 된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필름잇수다.
범죄 영화는 법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잔인한 살인과 처절한 복수, 그리고 뜻밖의 범인, 체포, 수사와 형벌.

그러나 범죄 영화들은 문제를 좀처럼 ‘법대로’ 풀진 않는다. 오히려 법의 권위와 상식을 의심하고 풍자한다. 최근 인기가 높은 한국 영화 ‘친절한 금자씨’(감독 박찬욱·朴贊郁)와 ‘박수칠 때 떠나라’(감독 장진·張鎭)는 그런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두 영화가 법을 어떻게 그리는지 눈여겨봤다.

○스스로 법이 된 금자 씨

‘친절한 금자씨’는 금자(이영애)의 복수와 구원에 관한 영화다. 금자는 자신의 딸을 볼모로 잡은 유괴범 백 선생(최민식) 대신 유괴 살해 죄를 뒤집어쓰고 13년간 수형 생활을 하며 백 선생에 대한 복수를 꿈꿔 왔다.

영화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금자가 두부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백 선생에 대한 복수를 마친 금자가 자신이 만든 두부 모양 케이크에 얼굴을 처박은 채 끝난다.

금자는 교도소를 나서면서 자신만의 수형 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백 선생에 대한 복수를 끝낸 뒤에야 자신에게 내린 형벌도 스스로 거둔다.

영화에서 금자의 ‘죄와 벌’은 이처럼 법이 아닌 금자가 스스로 정한다. 법은 금자가 자백했다는 이유로 금자가 짓지도 않은 죄로 형벌을 내리는 오판(誤判)을 할 뿐이다.

이 영화는 이 밖에도 곳곳에서 법과 공권력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금자가 백 선생에게 자식을 유괴당한 부모들을 모아 놓고 백 선생에 대한 처벌을 의논할 때 공권력의 상징인 최 반장(남일우)의 역할은 이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것이다.

○벌거벗은 공권력, 굿으로 해결한 수사

‘박수칠 때 떠나라’는 재벌의 정부(情婦)가 된 미모의 여인(김지수)이 최고급 호텔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매스컴을 통해 ‘쇼’로 방송되는 과정을 줄거리로 한다.

검찰 수사 과정 전반은 국내 최초의 생중계 ‘버라이어티 쇼’가 되고 쇼가 된 검찰 수사는 시청률에 좌우된다. 쇼의 PD는 범죄 용의자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시청률이 떨어지자 더 강한 쇼를 꾸민다. 검찰이 거의 밝혀낸 범인을 지목하는 장면에 ‘굿’을 이용해 볼거리를 더하고자 한 것.

굿 도중 PD의 몸에 피해자의 원혼이 들어서고 PD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원혼의 울부짖음에 호텔 지배인은 “몰래 옆에 누워 보고 싶어 수면제를 먹였다”고 자백한다. 논리와 이성을 대변하는 검찰 수사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굿이 제공한 셈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검찰 수사 전체가 잘못됐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피해자는 흉기에 찔리기 전 이미 절연산이라는 독극물을 먹고 자살한 것. 영화 초반 검사(차승원)에게 나타나 “끝을 보셨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진 것은 피해자의 환영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법을 비웃는 영화들

법은 현실에서 이성과 논리를 상징하며 그에 걸맞은 권위를 지닌다. 그것은 개인이 가질 수도 없고 버라이어티 쇼의 소재가 되지도 않는다.

두 영화는 법의 권위와 근엄함과 비밀스러움의 맞은편에 개인적인 복수와 구원, 굿과 환각을 대비시킨다. 두 영화는 법의 이성과 논리가 닿지 않는 영역에 주목한다.

영화의 흥미는 법에 대한 금기가 깨질수록 더해진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검사가 본 영화 속 검사…총쏘고 잠복근무? 허허▼

‘법대로’ 하지 않는 영화에 대해 법조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영화 ‘공공의 적2’의 주인공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강철중 검사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이름은 김준이었다. 이 영화가 모델로 삼은 대검찰청 연구관 김희준(金熙準·38·사법시험 32회) 검사의 이름을 딴 것. 촬영과정에서 이름이 바뀌었지만 강철중 검사는 김 검사와 같이 1967년생이다.

‘공공의 적2’의 장점은 ‘뛰어난 리얼리티(사실성)’란 평가가 많다. 하지만 김 검사는 ‘법대로’ 묘사되지 않은 장면이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검사가 직접 총을 쏘고 잠복근무를 하는 부분. 김 검사는 영화 제작진의 자문에 응하면서 “검사가 직접 범죄자와 맞서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강우석(康佑碩) 감독은 “사무실에서 앉아 있는 검사의 모습만 그릴 수 없다”며 김 검사의 의견을 ‘묵살’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피의자와 주먹다짐을 벌이는 대목. 영화를 본 송광수(宋光洙) 전 검찰총장 등은 “검찰 역사에서 검사가 피의자 집까지 찾아가 몸싸움을 한 적은 없다”며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김 검사도 이 부분을 지적했지만 강 감독은 오히려 “강철중이 검사 신분증을 부장에게 반납하고 피의자를 때린 것은 검사가 아닌 일반인의 자격으로 때린 것인데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김 검사는 “영화는 어차피 허구이기 때문에 현실의 법을 그대로 따르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며 “그러나 영화는 때로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허구를 추구하기 때문에 법에 대한 좀 더 치밀한 묘사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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