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우룡/KBS, 정말 공영방송인가

  • 입력 2003년 7월 21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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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KBS를 사랑한다. KBS는 방송법상 ‘국가기간방송’으로 한국 방송을 대표한다.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고 국내외 방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우리의 KBS다. 따라서 한국 방송의 문제는 곧 KBS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KBS에 늘 감사하고 있다. 언론학자로서 방송은 나의 연구 대상인데, 만약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진선진미하다면 나는 할 일을 잃게 된다. 외형은 날로 커지고 기술은 크게 발전했어도 다행히 KBS는 그 운영과 공적 책임에 있어서만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내가 KBS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 소이가 바로 여기 있다.

▼오락-상업성 스스로 돌아보면…▼

솔직하게 물어보자. 정말 KBS가 공영방송인가. “그렇다”고 답하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공영방송의 뜻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봄 개편 이후 오락프로그램의 편성 비중이 가장 높은 채널이 KBS 2TV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낮 방송을 기준으로 MBC가 48.1%, SBS가 51.6%인 데 비해 KBS 2TV는 무려 59.6%가 오락방송이었다. 오락방송은 공영방송과 상치된다. 새 사장 취임 후 KBS는 “시청률 경쟁을 지양하고 공익성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결과는 너무나 공허하지 않은가. 물론 조사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표본의 선정과 분류 기준이 그것이다. 그러나 KBS는 조사의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 이를 계기로 자신의 문제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편성의 색깔로 미루어 볼 때 KBS는 공영방송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흡하다.

편성내용만이 공영방송의 잣대는 아니다. 공영방송은 정치적 경제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운영 재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KBS는 상업방송이다. 수입의 60% 이상이 광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광고 수입을 늘리려면 시청률을 높여야 한다. 시청률을 어떻게 높일까. 오락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하는 것이 그 첩경이다. KBS의 위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KBS의 시청료를 현실화해야 한다. 월 2500원의 시청료를 적어도 신문구독료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반면 2TV 광고는 연차적으로 축소해 나가야 한다.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정치적 풍향에 따라 춤추고 있다면 그게 어디 국가기간방송인가. ‘국가방송’과 ‘국가기간방송’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KBS의 공신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성장의 정치적 배경과 도덕적 상처는 KBS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물을 사회자로 기용해 논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천재지변 등에 쓰라고 둔 예비비 112억원을 사원 보너스로 전용한 일도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의 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KBS 사원이 수령한 1년 평균 인건비는 8213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MBC의 9039만원에 비하면 뒤지지만 이 같은 사실은 많은 국민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방송의 목표가 종사자의 후생복지에 있다면 차라리 야당 주장대로 민영화가 올바른 길이다. 뭐든지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한 법이다. ‘월급 많음’으로 KBS를 자랑하지 말고 ‘직업적 긍지’로 사랑을 받아야 한다.

KBS는 사회의 소용돌이에서 무게 중심을 잡는 데 힘써야 한다. 국민이 흥분해도 KBS는 냉정해야 한다. 그러나 KBS는 정반대인 듯싶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출연을 요구한 심야프로그램 ‘시민 프로젝트, 나와 주세요’가 그 한 예다. 이 해프닝은 ‘시민의 이름으로’ 방송폭력을 휘두른 부끄러운 사례로 오래 기록될 것이다. 대통령 주례방송을 단독으로 맡겠다고 나선 일이나, 다음 총선에서 여권의 전위대로 나설 것이라는 평이 자자한 정치단체를 위한 무리한 방송은 KBS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

▼공정-공익성 무게중심 잡아야▼

남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먼저 겸허히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야당의 TV 시청료 폐지 추진이나 KBS 결산 승인안 부결에 대해서도 ‘선전포고’ ‘밀실음모’론으로 맞설 것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로 풀어야 한다.

KBS는 벼랑 끝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정치세력의 한 축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아우르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KBS가 진정 해야 할 일은 교육방송과 국제방송이 아니겠는가. 위기는 곧 기회다. 나는 여전히 KBS에 희망을 걸고 있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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