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와일드카드'…“조폭이라뇨? 강력반 경찰입니다"

  • 입력 2003년 5월 8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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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경찰 뱃가죽은 철판이냐?”

영화 ‘와일드 카드’의 주제는 극 중 지하철 소매치기 일당이 경찰을 칼로 위협하며 자신있게 내던지는 이 한마디로 집약된다. 이 영화는 바바리 코트 깃을 날리며 현장에 나타나 범인을 향해 폼나게 총구를 겨누는 경찰이 아니라 사시사철 잠복근무에 지치고 범인에게 칼을 맞을까봐 두려워하는 보통 경찰을 그렸다.

극 중 방제수 형사(양동근)가 “권총은 범인을 쏘라고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범인 뒷통수에 힘껏 던져 맞추라고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3반의 고참형사 오영달(정진영)과 신참형사 방제수(양동근)에게 4인조 ‘퍽치기 일당’을 잡으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퍽치기’란 길 가던 사람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쳐 죽인 뒤 금품을 훔쳐가는 것. 단서라곤 범인이 주먹만한 쇠구슬을 무기로 쓴다는 것 뿐이다. 오영달과 방제수는 범행 현장 인근의 우범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잠복근무를 하면서 범인의 행방을 찾는다.

범인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가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 안을 촘촘히 채우는 디테일이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김유진 감독과 이만희 작가는 2년동안 시나리오를 쓰면서 200여명의 경찰관계자를 인터뷰했다고 한다. ‘퍽치기’를 소재로 한 이유도 “돈만 빼앗는 ‘아리랑치기’와 달리 반드시 피해자를 죽인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쁜 데다, 현장에 증거가 남지 않아 형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범죄에 속한다”는 경찰 증언에 따른 것.

이 외에 오랜 취재 끝에 나온 디테일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밤에 잠깐 집에 들려 옷만 갈아입고 나오는 오영달이 잠자는 딸의 ‘누운 키’를 재며 “이만큼 컸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나, 국경일에만 집에 들어가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는 뜻에서 김반장(기주봉)의 별명을 ‘국경일’로 지은 것 등이 그렇다. 유흥업소 사장에게 죄적을 면해주는 댓가로 범인의 정보를 빼내는 것도 실제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보다 ‘웃기기로 작정한’ 코미디 영화가 아니면서도 시종일관 관객의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데 있다. 그 일등공신은 퇴폐 안마시술소 사장인 도상춘 역의 이도경. 나이 50에 영화에는 처음 출연했지만 ‘불 좀 꺼주세요’, ‘등신과 머저리’, ‘용띠 위에 개띠’ 등 40여편의 연극에 출연해온 연극계의 베테랑이다.

극중에서 자라피를 즐겨먹고 숱한 부하를 거느린 카리스마의 소유자면서도 형사 앞에서는 비굴할 정도로 꼼짝 못하는 양면적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했다. 과장된 경상도 사투리와 다양한 표정연기가 일품.

강나나(한채영)와 방제수의 로맨스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만큼 영화에 녹아들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MBC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양동근은 이번 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아 혈기왕성한 형사 역을 무난히 소화했다. 영화 ‘약속’을 만든 김유진 감독 작품. 18세 이상 관람가. 16일 개봉.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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