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섹슈얼 매카시즘에 맞선 '소신' 컨텐더

  • 입력 2003년 1월 13일 19시 12분


코멘트
‘컨텐더’ 사진제공 무비랩

‘컨텐더’ 사진제공 무비랩

독일 속담에 ‘모든 사람을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재주’라는 말이 있다. 이 격언을 따르기라도 하려는 듯, 정치 스릴러 영화 ‘컨텐더(The Contender)’는 절대다수를 만족시켜야 하는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명백하게 당파적인 입장을 취한 영화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의 정치적 입장은 리버럴하고 친(親)민주당 적이며, 이른바 ‘섹슈얼 매카시즘’에 정면으로 맞선다.

미국 부통령이 갑작스레 죽자 대통령(제프 브리지스)은 여성 상원의원 레이니 핸슨(조안 알렌)을 부통령에 지명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부통령 신임을 위한 하원 법사위원회의 청문회가 열리자마자 핸슨은 대학 재학때 섹스파티를 열었다는 스캔들에 휘말린다. 여성 부통령이 마뜩찮은 청문회 의장 셜리 (게리 올드만)는 부통령 신임보다 섹스 스캔들 쪽으로 청문회 분위기를 몰고 간다.

핸슨이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대낮에 책상 위에서 남편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이다. 그는 남성화한 여성도, 중성적인 존재도 아니고 ‘여성’이다. 그래도 그가 부통령이 되는 것이 온당한가? 영화는 관객에게 계속 난감한 질문을 던진다.

섹스 스캔들로 곤경에 처했는데도 핸슨은 끝까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노 코멘트’로 일관한다. 스캔들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뒤 대통령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사생활이 아니라 능력이다. 스캔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는 순간, 부통령 자격과 사생활이 관련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고 대답한다. “정치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해서 원칙을 버릴 수는 없었다”는 것.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 공직자에게는 그처럼 불가능한 인격보다 위기의 순간에도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 소신이 더 중요하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지닌 영화다.

거의 대부분 실내에서 느린 속도로 전개되는 영화이지만, 배우들의 호연 덕에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감독은 기자 출신인 로드 루리. 18세이상 관람가. 17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