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11번 홈쇼핑 방송만…" 케이블TV '채널횡포'

  • 입력 2002년 11월 8일 18시 36분



“도데체 KBS1은 몇 번에서 나오는 거야?”

케이블TV를 최근 설치한 직장인 박모씨(34·서울 서초구 반포동)는 KBS와 SBS 그리고 MBC를 보기 위해 고유채널인 9, 6, 11번을 눌렀다가 엉뚱하게 홈쇼핑방송만 나오자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는 “시청자의 채널 인지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채널을 홈쇼핑방송에 멋대로 배정한 상술이 얄밉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경우 최근 ‘MBC스포츠채널’이 30번에서 40번으로 변경됐다. NHK위성 채널인 ‘BS2’는 방송이 아예 끊겼다. 대학생 강모씨(24)는 8일 “몇 개월도 못 가 채널이 멋대로 바뀌어 짜증스럽다”며 “해당 지역 케이블방송사는 인터넷사이트에 아예 채널편성표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청자’보다 ‘이익’ 우선〓올 초 위성방송이 개국하면서부터 유선TV의 채널 변경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프로그램 공급사업자(PP)들이 대폭 늘어나자 각 지역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채널을 수시 조정하고 있는 것.

2000년 말 44개였던 PP는 올해 6월 190개로 4배 이상 늘었다. SO는 이 중 60∼100개를 선별해 채널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SO들이 채널을 배정할 때 시청자의 ‘편리함’은 무시되기 일쑤다. 특히 공중파TV의 고유채널(6, 7, 9, 11번)과 이 사이에 있는 채널(5, 8, 10, 13)은 홈쇼핑업체에 집중 배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홈쇼핑업체들이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SO에 마케팅비용으로 지급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케이블방송의 경우 대주주인 ‘현대백화점’을 의식해 ‘현대홈쇼핑’을 이례적으로 7번과 56번에 중복 편성해주고 있다.

최근 서울 강동케이블방송에서 채널을 배정받지 못해 수신이 정지된 ‘동아TV’의 관계자는 “SO측이 시청수요보다는 ‘재정기여도’만을 잣대로 채널을 선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널변경 ‘횡포’〓채널 설정은 현행 방송법상 전적으로 SO들의 권한. 그러나 시청자들의 ‘채널 인지(認知) 관성’을 무시한 ‘채널 셔플링(임의설정)’이 도를 넘어서는 것이 문제다. 채널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시청자들은 ‘원치 않는’ 방송을 볼 수밖에 없다.

SO들이 ‘수신자 약관’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다. 약관은 한번 채널을 설정하면 6개월 이내에 바꾸지 못하도록 되어있지만 지키는 SO는 많지 않다. 방송위원회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SO가 108개에 이르고 운영능력도 미숙한 경우가 많아 엄격하게 감독하기 어렵다”고 실토했다.

▽외국의 경우〓한국케이블방송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케이블TV 유료가입자수는 595만명, 연말까지는 750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디어전문가들은 가입자가 급증한 만큼 케이블TV 채널선택 방식을 선진국처럼 10여가지 이상으로 세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영화 오락 홈쇼핑 뉴스 등 항목별로 채널을 모아놓아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강남준(姜南俊) 교수는 “미국 케이블방송협회 조사 결과 150여개 채널 중 가입자가 즐겨보는 채널은 13∼16개 미만이었다”며 “CNN, ESPN 등 지명도가 있는 방송은 미 전역이 거의 대부분 고정채널을 배정하며 채널변경을 할 경우 가입자에게 가이드북을 발송하는 등 시청자 편의를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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