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흥행 첫걸음 시나리오]'친구' '집으로'도 퇴짜맞은 대본

  • 입력 2002년 4월 29일 17시 26분


최근 서너 개의 시나리오 공모전이 끝났다. ‘막동이’ ‘미라신 코리아’ ‘백두대간’ 정기 시나리오 공모 등이 그것이다. 공모전 시즌이 아니더라도 최근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급격한 성장기를 맞은 한국 영화계에 고품질의 새로운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찾아라▼

이야기의 중요성은 영화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한 계속 강조될 것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메카인 미국 ‘픽사 스튜디오’에서도 가장 강조되는 건 특수효과가 아니라 이야기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감독인 존 래세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세 가지인데 첫째는 이야기이며, 둘째도 이야기이고, 셋째도 이야기다”고 말했을 정도다.

시나리오 공모전은 신인작가의 등용문이다. 물론 공모전을 불신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트렌드를 읽기 위한 주최측의 요식 행위”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모를 통하지 않으면 작가 입문의 길은 더욱 좁다. 무작정 영화사를 방문하는 것은 공모전보다 소모적이고 알음알음으로 찾아가 깊은 얘기를 나눈다고 해도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린다.

▼탈락한 시나리오의 복수?▼

기성 감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연출하기 전 이러저런 시나리오를 들고 수년간 충무로를 전전했고 곽경택 감독의 ‘친구’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1년을 뛰어다녔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는 이 감독의 데뷔작 ‘미술관 옆 동물원’을 제작했던 ‘친정’(시네 2000)에서 퇴짜를 맞은 경우.

김기덕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협회에서 운영하는 ‘영상작가 교육원’을 마치고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돼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공모전 ‘5전6기’를 거쳤다. ‘무단횡단’도 예심에서 탈락했다가 한 심사위원의 ‘뒤늦은 발견’으로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이나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도 공모전을 통해 영화로 태어난 경우다.

당선권에 들지 못했으나 제작자의 눈에 띄어 영화화된 경우도 있다. ‘조폭마누라’는 한 공모의 예심에서 탈락했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된다는 것은?▼

한국에 900여개의 영화 제작사가 등록돼 있다. 최소한 3000여편이 충무로를 떠다닌다. 1년 제작편수를 넉넉잡아 75편이라고 보면 이들이 영화로 살아날 확률은 40분의 1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바늘구멍’을 통과해 시나리오 작가로 입문한다고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몇몇 영화사들이 전속작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아직 시나리오 작가를 관리 육성하는 시스템은 취약하다. 활동중인 100여명의 시나리오 작가 중 시나리오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는 10여명에 불과하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자존심도 버려야 할 때가 많다.

한 작가는 “감독과 프로듀서의 손을 거치면서 제목만 남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한다. 이야기 생산자로서의 자존심이 깡그리 무너지는 순간이다. 치솟는 스타의 몸값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도 심하다. 좋은 시나리오는 절반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시나리오 투자비는 제작비의 3% 정도에 불과하다. 개런티도 데뷔 작가는 1500만원 정도, 일급 작가들도 3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스타 한명에게 3억∼5억원을 지불하는 등 주연 캐스팅에 제작비의 20∼30%를 붓는 것도 모자라 러닝 개런티까지 챙겨주는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수준이다.

▼할리우드와 시나리오 작가▼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은 할리우드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스물다섯 단어 이하로 말하라”고 말하는 ‘플레이어’나 ‘바톤 핑크’ 같은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의 비애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한국과 다른 점은 일단 작가가 되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준다는 것이다. 전체 제작비에서 시나리오 투자비율도 10%에 육박하고, 작가를 육성하는 전문인력과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관련해 지난해 할리우드의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케이블TV 인터넷 DVD 등에 대한 재상영권 인센티브를 요구했고 ‘감독 작품(A Film By)’이라는 크레딧을 없애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부응해 ‘아메리칸 뷰티’의 감독 샘 멘데스는 스스로 크레딧을 포기하기도 했다.

유승찬·영화사 '백두대간' 전무 idgangnam@hanmail.net

2002년 시나리오 공모 현황

주최기간고료비고 및 연락처
영화진흥위원회상반기 6월10∼14일,
하반기 10월14∼18일
대상 1편 2000만원
우수작 2편 1000만원
저작권 작가 보유
〃(애니메이션)10월21∼25일〃(02-9587-573)
막동이 시나리오3월23일(마감)당선작 1편 1000만원
가작 1편 500만원
영화제작시 4000만원 추가
(02-2000-6846)
백두대간3월25일(마감),
하반기 9월25일
당선작 1편 5000만원
우수작 2000만원
영화화 적극 추진
(02-747-7782)
SBS 중앙일보
-영화문학상 (SF)
3월31일(마감)당선작 3000만원02-3660-1762
과학문화재단
동아수출공사
7월30일대상 5000만원,
가작 1000만원
SF 영화 소재
(02-3451-4821)
미라신 코리아3월30일(마감)당선작 1편 3000만원
가작 2편 1500만원
시놉시스, 아이디어도 공모
(02-563-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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