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나쁜 남자', 깡패와 여대생의 '엽기적 사랑'

  • 입력 2002년 1월 3일 18시 19분


해외에서 더 줏가가 높은 김기덕 감독(42)이 새해에는 국내 관객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2월 열릴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그의 일곱번째 영화 ‘나쁜 남자’는 이전 김감독의 영화에 비해 이야기가 쉽게 전개된다.

▼조재현 냉혈연기 볼만▼

김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동안 신체 훼손(섬)과 거친 남성(야생동물 보호구역) 등을 통해 보여줬던 상징의 강도를 대폭 줄였다.

대신 그는 ‘파란대문’ 등 전작에서 배경에 그쳤던 사창가를 중심에 둬 이야기 전개를 보다 대중화했다.

사창가 깡패 한기(조재현)는 한눈에 반한 미모의 여대생 선화(서원)에게 망신을 당하자 계략을 짜 그녀를 사창가로 끌고 온다.

선화는 사창가를 탈출했다가 스스로 돌아오면서 어느덧 ‘한번에 6만원짜리’로 길들여진 자신을 깨닫는다. 그리고 깡패 한기에 대한 증오도 사랑과 뒤얽힌 애증으로 바뀌어 간다.

여대생과 자신을 창녀로 만든 인간 쓰레기와의 소통이라는, 이 김기덕 표 ‘엽기 러브스토리’는 갈수록 혼돈스럽다.

가학자와 피가학자인 둘의 만남에는 ‘될대로 되라’ 식의 허무주의와 온갖 추악함이 배인 악마주의까지 엿보인다.

한기가 살인죄로 구속되자 면회를 간 선화는 “누구 맘대로 거기서 죽어”라며 절규한다.

선화의 이런 행위가 복수를 벼르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 슬퍼서 오열하는 것인지를 굳이 구분하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선화는 마치 인질들이 시간이 지나면 인질범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스톡홀름 증후군’과 유사한 정서적 공황 상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는 한기가 결국 선화를 자기 여자로 만들면서 절정을 향한다.

한기와 선화가 트럭으로 부둣가를 떠돌며 ‘이동 매춘’에 나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기는 몽환적인 표정을 짓지만 선화도 알듯말듯한 미소를 머금는다.

▼"공감" "판타지"평 엇갈려▼

이 장면을 놓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사회에서도 “새디즘과 마조히즘이 교차된 김기덕 정서의 절정”이라는 찬사와 “김기덕이 창조해 낸 ‘마초 판타지’의 결정판”이라는 혹평이 엇갈렸다.

그 자리에서 김감독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을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으나 한 여성 관객은 ‘나쁜 남자’ 포스터를 찢어버리기도 했다.

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씨는 “수년 전 많은 매춘 여성들을 인터뷰했을 때에도 선화가 느꼈을 법한 정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며 “‘나쁜 남자’는 철저히 남성 중심적 판타지”라고 말했다.

한기 역의 조재현은 오만가지 얼굴을 가진 깡패 연기로 “이 영화는 조재현의 영화”라는 찬사를 들었다.

11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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