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드라마속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

  • 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18분


요즘 TV 드라마의 화두는 ‘추락하는 아버지’다. 세파에 시달리고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이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이 드라마 곳곳에 나오고 있는 것.

아버지들의 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는 TV드라마는 KBS 2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토일 오후 7·50), SBS ‘피아노’(수목 밤 9·55), MBC ‘여우와 솜사탕’(토일 오후 7·50) 등. 하지만 이 드라마들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를 지나치게 대립적 관계로 묘사하거나 아예 아버지를 부정하는 경우가 많이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드라마속 아버지들이 어떻길래

TV드라마 속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왜곡되고 일그러진 아버지상(像)이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에 나오는 아버지(김세윤)는 첩을 두고 두집 살림을 하는 통에 부도덕과 패륜을 저지르는 자식에게 한마디도 타이르지 못한다.

‘피아노’의 아버지(조재현)는 3류 건달 출신. 자식들은 그를 “아버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무시하고 아버지는 이를 망연자실 바라본다. ‘여우와 솜사탕’의 아버지(백일섭)는 시대 변화를 헤아리지 못하고 고지식하게 ‘가부장적 권위’에 매달린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권위’라는 것은 부인조차 인정하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왜 이런 아버지들이 나오나

서강대 교육학과 정유성 교수는 “TV드라마가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며 “수직적 가족 관계가 수평적 가족 문화로 바뀐 현실에서 아버지들은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지 못해 가족들에게 따돌림당하거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이 시대 아버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경제적 토대인 직장에서 흔들리게 됐으며 이로 인해 가정에서도 권위가 크게 추락했다는 것.

아울러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남성의 여성화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권위주의 가부장제에 익숙한 아버지들이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청자 반응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자영업자 문호섭(47·서울 중계동)씨는 “요즘 TV드라마는 아버지와 자식들이 싸우는 모습만 이어져 가족들과 함께 보기 민망할 때가 많다”며 “혹시 자식들이 그릇된 가족관을 갖게 될 것 같아 채널을 돌린다”고 말했다.

최근 남편이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주부 정모(40·서울 명일동)씨는 “아버지와 자식간의 불신과 가족의 붕괴를 묘사한 드라마가 내 일처럼 느껴져 공감이 가기도 한다”면서도 “그렇지만 극적 재미를 위해 드라마를 지나치게 ‘아비없는 사회’로 몰아 가는 것같다”고 성토했다.

젊은 층은 40대 이상 계층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최정연(25·경기 군포)씨는 “드라마를 보면서 한때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며 반항했던 시절이 떠올랐다”면서 “그러나 최근 드라마에서 아버지가 다소 왜곡되게 그려지는 것은 새로운 아버지 상에 대한 강한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결말은 아버지와의 화해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의 극작가 최윤정씨는 “가족 구성원이 갈등을 넘어 화합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며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던 아들들이 아버지와 다시 화합하는 것으로 끝맺음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아노’의 오종록 PD도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거부당하는 아버지의 고민이 계속되지만 결국은 서로 화해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우와 솜사탕’에서는 개방적인 며느리(소유진)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푼수에 가깝던 시아버지가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새로운 아버지로 거듭나게 된다.

<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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