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머글의 눈에 비친 해리 포터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48분


미국에 올 때 나는 한글로 된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야 나도, 6학년인 딸아이도 영어를 더 접할 수 있을 거라는 간특한 계산에서였다. 그런데 빗나갔다. 영어를 못하는 딸아이는 무섭게 컴퓨터에만 매달렸다. 연예인 동정, TV프로그램 같은 것에 대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빠삭해졌다.

그런 아이가 컴퓨터에 지쳤는지, ‘해리 포터’책을 사달라고 했다. 이럴수가! 나는 책광고를 믿지 않는 사람인데, 글쎄 이 책이 광고문구 그대로 ‘컴퓨터에 빠진 아이를 책벌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딸아이와 나는 그렇게 4부까지 10권을 몇 번씩 읽고나서 손꼽아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기다렸다. 그리고 16일 개봉하자마자 보러갔다.

▼영화적 완성도는 묻지 마시라▼

영화는 책과 똑같았다-책을 보며 상상했던 것들이 마법처럼 영상으로 옮겨진 것 같았다.

“영화내용이 책과 똑같으냐?”는 개봉전 예비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해리 역을 맡은 대니엘 래드클리프도 TV 토크쇼에 나와 “영화는 책에 충성했다(이렇게 번역하면 안되는 건 안다. 하지만 충성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대답했다. 더즐리 가족에게 구박받던 시절, 관객에겐 보이지도 않는데 해리의 안경테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을 정도다.

물론 작가인 조안 K. 롤링이 크리스 컬럼버스 감독에게 책의 내용을 손상하지 말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지만, 이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영화 ‘해리 포터’가 영화적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평론가들의 몫일뿐, 해리 포터의 팬들에게는 손톱만큼도 의미가 없다.

마치, 오랫동안 “홍길동이 온대, 홍길동이 온대”하고 말로만 홍길동 얘기를 들으며 기다렸던 사람들이 실제로 홍길동을 보고 환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살아 움직이는 홍길동과 영화속 해리가 어떻게 같으냐고 따지지 마시라. 영상세대에게는 영상속 인물이 실제보다 더 현실적으로 여겨지는 법이므로.

▼해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영화는 고양이로 변신한 맥고나걸 교수와 덤블도어가 아기 해리 포터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청난 덩치의 해그리드가 하늘에서 불쑥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이마에 번개모양 흉터가 있는 해리를 머글(마법사가 아닌 사람)인 더즐리 집 현관앞에 놓아둔다.

다음 장면은 열한살의 해리 포터다. 해리 역의 대니엘은 4부 ‘불의 잔’ 표지그림에 있는 얼굴과 신기하리만치 닮았다. 컬럼버스 감독이 해리를 못찾아 몇 달을 허송하다가 영국 BBC방송에서 하는 ‘데이비드 커퍼필드’에 나온 대니엘을 보고 바로 점찍었다는 아이다.

“대니엘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표정과 열린 마음, 따뜻하면서도 너그러운 표정을 지녔다. 너무 예민하거나 귀엽지 않다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헤이만은 “대니엘은 모든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이”라고 말했다. 내 딸아이가 단숨에 대니엘과 사랑에 빠졌을 정도로.

▼꿈속의 일들이 마법처럼 현실로…▼

신입생들이 작은 배를 타고 유리처럼 부드러운 호수를 미끄러져 내려가 거대한 호그와트 성으로 가는 장면, 둥둥 떠있는 수천개의 촛불로 밝혀진 이상야릇하고 멋진 연회장 장면 등등, 책을 읽으며 독자가 상상한 장면은 거짓말처럼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법사의 돌을 찾으러 나선 해리, 론, 헤르미온느가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그야말로 인정사정없이 체스게임을 하는 신이다. 이 장면은 컬럼버스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신이기도 한데, 론의 희생정신, 잘난척만 해온 헤르미온느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해리의 용기가 스펙타클한 영상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책을 고스란히 베낀 듯한 이러한 영상들은 그러나 평론가들을 흡족하게 해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뉴욕 타임스도 “책을 노예처럼 따랐기 때문에 영화는 상상력이 부족했다”며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겁먹고 주춤하는 사람처럼 너무 신중했다”고 평했다.

잘난 평론가들이 뭐라 그러거나 말거나, 해리의 팬들은 상관없다. 평론가들은 아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영화가 책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적 감동을 지녔기를 원했던 모양인데, 영상시대 디지털키드(디지털맨을 포함하여)가 바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게 아니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해리야, 고맙다▼

디지털키드는 영상을 그냥 쳐다만 보지 않는다. 컴퓨터게임을 하듯, 화면만 떠있으면 알아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상호교감을 한다. 해리 포터가 내 눈앞에서 움직인다, 이거면 충분한거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소화한다.

그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되레 영화 ‘해리 포터’가 책의 흡인력을 그대로 영상에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이 책을 세계적 밀리언셀러로 만든 이유와 같다. 다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구박받던 고아 해리가 알고보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라는 사실은 어른 아이를 불문하고 모든이들이 “나도 그랬으면…”하는 바다. 게다가 9.11을 겪은 미국은 뭔가 위안이, 어디론가 도피처가 필요한 시기 아닌가.

책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대니엘은 팬들의 열망을 배반하지 않았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미소짓는 모습은 단순히 귀엽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뛰어 가서 마주 웃으며 더벅머리를 마구 흐트러놓고 싶을 만큼(친근한 이미지와), 그 머리를 다시 매만지는 척 하다가 이마위 번개 상처를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진짜 마법사같은 마력과), 그리고 그 아이를 한번 껴안아 주고 싶을 만큼(괜히 가슴저미게 하는 여운까지).

컴퓨터를 치고 있는 지금, 머글인 내 옆에서 해리가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아 나는 행복하다. 영화를 보고 행복하다 싶었던 적이 얼마만인지.

<김순덕 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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