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와니와준하' 호수같은 우리 사이…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40분


순정 영화 ‘와니와 준하’는 이미지가 180도 바뀐 김희선의 영화다. 휴대전화 CF에서 팡팡 튀던 그는 이 영화에서 70년대식 검은 다이얼 전화기를 잡는다. 특유의 유리가 깨지는 듯한 웃음도 “아, 날씨 참 좋다∼”며 먼 산을 보는 그윽한 눈빛으로 대체됐다.

주체할 수 없는 발랄함으로 1990년대 말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으로 꼽혔으나 ‘자귀모’ 등 흥행이 기대밖으로 저조했던 영화에 이어 누드집 파문으로 가라 앉았던 김희선. ‘와니와 준하’는 이런 김희선을 완전히 뒤집어 보는 영화다.

만화를 그리는 스물 여섯 살 애니메이터인 와니(김희선)는 동갑내기 시나리오 작가 준하(주진모)와 춘천에서 동거하고 있다.

그저그런 20대 동거 남녀처럼 무난하던 어느날, 와니는 그의 이복동생이자 첫 사랑인 영민(조승우)이 유학갔다 돌아온다는 얘기를 듣고 흔들린다. 그리고 영민을 짝사랑하던 와니의 후배 소양(최강희)이 이 소식을 듣고 와니의 춘천 집을 찾고, 소양이 옛 추억을 하나둘씩 더듬어가자 와니는 준하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특별히 눈에 띄는 에피소드가 없는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극중 애니메이션을 삽입하고 시간적 배경을 현재에서 과거로 돌연 이동시키는 ‘플래시 백’(Flash Back)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극의 클라이막스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밋밋한 구성 탓에 이런 기법들은 아쉽게도 ‘잔재주’에 그친 듯하다.

소양이 술취한 채 자전거를 타며 주정을 부리는 장면 등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는 대목이 몇군데 있긴 하다. 그러나 와니의 선배를 동성애자로 설정한 대목은 뒤늦게 극의 재미를 살리려했던 것인지, 동성애의 타당성을 던지려 했던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이 영화로 재기의 날갯짓을 펴려던 김희선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 하지만 이전의 팡팡 튀던 이미지와 ‘와니와 준하’의 순정 캐릭터를 사이에서 그는 더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사’에서 고려의 최정 장군 역을 맡은 주진모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순정만화 캐릭터를 무난히 소화했다. 독립영화집단 ‘영화제작소 청년’ 출신 김용균 감독의 데뷔작. 전체 관람가. 23일 개봉.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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