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TV읽기]'스리 테너'생방송 진행 미숙에 감흥 반감

  • 입력 2001년 6월 27일 18시 33분


다소 여윈 얼굴의 호세 카레라스, 머리카락이 약간 부스스해 보이는 플라시도 도밍고, 거구치고는 비교적 날렵한 몸매의 루치아노 파바로티. 스리 테너가 한국에 왔다. 외신이나 음반으로만 접했던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같은 하늘 아래서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건, 동시대인의 특권이고 기쁨이었다.

열창하는 그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한 곡 한 곡 임하는 표정은 진지했고, 곡 해석에는 거장다운 노련함이 묻어났다. 강렬한 조명에 흥분한 날벌레들이 이따금씩 말끔한 영상에 파문을 놓는다. 그 사이로 비친 거장은 문득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스리 테너가 탄생한 로마 월드컵이 벌써 10년 전이다.

22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스리 테너 콘서트는 가장 좋다는 VIP석이 25만원이었다는데, 나는 VIP석보다 훨씬 가깝고 편한 곳에서, 그것도 돈 한푼 안들이고 그들의 노래를 감상했다. MBC가 창사 40주년 기념행사 턱으로 마련한 콘서트라, 공연과 동시에 생중계됐기 때문이다.

◆ 진행자 자아도취-논리 어긋난 표현 민망

스리 테너 콘서트를 보며 이번 행사의 ‘공동 주연’은 방송사라는 생각을 했다. 최신 음향기기와 대형 멀티비전이 총 동원된 방송사의 중계기술이 없다면 제 아무리 스리 테너라도 4만 5000명을 헤아리는 관중 앞에서 무슨 수로 노래를 부르겠는가. 또 연일 내보내는 스팟 광고가 아니면 50억 원이 넘는 행사비용을 무슨 수로 조달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성대한 생일잔치를 치를 수 있는 회사는 한군데도 없다. 설령 돈이 있더라도 여론이 무서워서 못한다.

사실 공영방송의 생일잔치치고는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느낌이 짙었다. 하지만 스리 테너에 열광하는 음악팬들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어찌됐건 방송사가 나섰기에 우리 시대 최고의 거장 셋을 코앞에서 볼 수 있었으니, 좋은 일 아닌가.

그렇지만 생방송 중계에서 드러난 미숙함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세 명의 진행자가 전혀 화음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성 진행자는 “대단하다”를 연발했는데, ‘대단한’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일수록 행사에 압도되지 말고 무게 중심을 잡는 ‘앵커’ 역할을 해야 한다. 자가발전, 자화자찬, 자아도취의 표정이나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전문가에게 던지는 질문도 너무 두루뭉실했고,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콘썰트’라는 발음도 계속 귀에 거슬렸다.

나머지 두 명의 전문가는 말하는 훈련이 전혀 안된 사람들이었다. “그전 때는” “루치아노 분이” “예술적인 면이 결핍하다” “스리 테너의 성공이 가져온 교훈은 클래식도 하기에 따라서는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같은, 문법이나 논리가 어긋난 말들은 듣기 민망할 정도였다.

여긴 방송사도 책임이 크다. 두 명의 전문가는 각각 말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전문성을 쌓은 이들이다. 그들에게 생방송의 특수성과 방송 언어의 중요성을 충분히 주지시키고, 그에 맞게 준비하도록 도와주었어야 했다.

◆ 공연 말미 엉뚱한 폭죽 정말 의외

진행자는 행사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앵콜곡이 시작되기도 전에 물러가는 것은 행사도중 빠져나가는 관중과 다를 게 없다.

공연 말미를 장식한 폭죽은 정말 의외였다. 공연자는 관객과 마주보고 있어야 한다. 놀란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스리 테너의 모습을 보며 두 시간 동안 쌓인 감흥이 불꽃처럼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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