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아줌마 전여옥이 본 드라마<아줌마>

  • 입력 2001년 1월 9일 18시 35분


나는 아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아줌마”하고 부르면 열받는다. 우선 아줌마라고 불릴 때 결코 좋은 일이 없다. 버스기사는 “빨리 좀 타쇼”라고 야단칠 때, 가게에서 “안살려면 관둬요” 등 등 주로 핀잔들을 때 “아줌마!”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에게 가장 만만한 그 이름―바로 ‘아줌마’이다. 또 ‘아줌마’라고 마구 불리울 때 아저씨들의 “댁은 ‘여자 시한’ 만료야”라는 노골적인 암시도 들어있다. 그래서 아줌마들은 누가 “아줌마”해도 ‘난 아냐’하며 짐짓 못들은 척한다.

드라마 <아줌마>에는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면 너무나도 처절한 여자의 현실이 있다. 오빠 친구인 장진구(강석우)에게 겁탈당해 한 결혼, 두 아이의 엄마로서 꿋꿋한 그러나 불행한 선택, 속물근성으로 똘똘 뭉친 시집식구들의 하녀노릇, 그리고 어줍잖은 지식인 남편에게 우롱당하기가 그녀의 삶이었다. 아줌마의 결혼생활은 안드레아 드워킨의 표현대로 ‘결혼〓강간으로부터 생긴 제도’ 그 자체였다.

친정어머니 생일조차 안챙기는 남편 장진구는 오삼숙(원미경)을 덮치며 소름끼치는 ‘부부 사이의 강간’을 보여준다. 그 뿐인가, 장진구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지식인의 허위의식’ ‘봉건제의 질곡’을 주워대며 아줌마는 물론 시청자인 나도 못알아 듣는 말로 사기를 친다. 일종의 ‘정신적 유린’이자 ‘지적 강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줌마’의 가장 큰 흡인력은 바로 ‘친근감’ 때문이다. 수많은 아줌마를 겪은 내 경험에서 오는 친근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장진구의 행동거지를 뜯어보며 느끼는 ‘어디서 많이 봤는데―’하는 ‘묘한 친근감’ 때문이다. ‘학문의 형이상학’ 운운하며 잘난척 할 때 우리를 속여온 한국 지식인그룹의 오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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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구가 잔머리 굴리며 전문용어를 줏어 섬길 때는 ‘특수 직업용어’를 독점하며 우리를 기죽여온 전문가집단의 독선을 떠올리게 된다. “다 당신과 아이들을 위한 거야”라며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할 때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거국적 결단’을 내려 자민련으로 간 국회의원들이 생각난다. 또 수세에 몰렸다하면 포복자세로 자존심이고 뭐고 없이 “나좀 살려주라”고 싹싹 비는 모습 역시 어디서 수없이 본 것들이다.

아줌마는 그 동안 당하고 속고 돈 털리며 유린당한 우리 국민의 모습이다. 우리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아줌마였던 것이다. 작가 정성주가 말하고자 한 것은 억울한 아줌마인 우리의 각성이다. 결론은 당연히, 아줌마는 이혼해야 한다. 가정과 결혼의 신성함과 소중함을 위해서라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아줌마는 이혼해야 한다.

유지될 필요가 있는 가정만이 유지되어야 한다. 또 이혼은 결혼제도의 받침대이기도 하다. ‘발전적 해체’가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아줌마’ 제작진은 사려깊게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을 대충 덮고 “아무일도 없었어요”라고 한다고 해서 과연 현명한 삶이자 판단일까? 아줌마가 ‘지겨운 3류 드라마’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모처럼 주먹을 불끈 쥔 아줌마의 건투를 기대한다.

<방송인·㈜인류사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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