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EBS '우리음악' 강좌 열풍 임동창씨 인터뷰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52분


EBS가 지난 주에 기획시리즈(월∼목요일 밤 10시40분) 첫편으로 선보인 ‘임동창이 말하는 우리 음악’의 반응이 심상찮다. 그가 들려주는 우리 음악이 그렇게 쉽고 신나고 재미있을 수 없다는 게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제작사가 당초 제안했던 16회분을 좀 더 늘리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서울 교보문고 등에서는 그의 음반들이 덩달아 매진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역시 EBS에서 방영된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강연에 이어 또 한차례 TV강좌열풍을 몰고 올 조짐이다.

양악과 국악을 넘나드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임동창(44)의 꿈이 대중음악가라는 것은 약간 뜻밖이다.

8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케이블TV 스튜디오. 녹화가 끝나도 방청객이 자리를 뜨지 않자 그는 서비스로 신나게 ‘남행열차’를 연주한다. 녹화 중에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연주했고 경기민요 명창에게는 ‘칠갑산’을 부르게 했다. 녹화 전날 강원 영월에서 열린 김삿갓 추모제에 가서는 ‘나그네 설움’을 불렀다.

그에게는 ‘아리랑’만 우리 음악이 아니다. 시장통 아저씨 아줌마들이 불러대는 ‘뽕짝’도 죄다 우리 음악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우리음악과는 개념이 다른 것 같은데….

“뽕짝이다 엔카(戀歌)다 비난해도 사람들이 즐기는 걸 막을 수는 없는 거요. 감성에 가 닿으니까. 그게 바로 문화라는 것 아니겠오.”

민머리에 동자승같은 이미지의 괴짜 음악가 임동창. 실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인천 용화사로 출가해 비구계까지 받은 승려였다. 후에 군대생활에다 첫 사랑까지 겹쳐 파계하고 말았지만….

―흥에 겨워 몸 흔드는 폼은 캬바레풍인데….

“스탠드바에서 전자오르간을 치며 손님이 2000원 주면 2절까지 반주해주고 1000원 주면 1절까지만 반주해주는 일을 한 적이 있긴 한데…. 대학에 가기전 27세 때 울릉도에서 그걸로 먹고 살았어요.”

―늘 서서 피아노를 치나요.

“반주를 하다보면 나가서 함께 춤추고 싶은데 피아노앞에만 앉아 있으려니 갑갑하잖아요. 그래서 서서 엉덩이를 흔들며 치는 거요.”

임동창은 29세의 늦은 나이에 서울시립대에 입학, 서양 현대음악작곡을 공부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독학한 작곡을 조목조목 ‘확인사살’한 것일 뿐이다. 피아노를 처음 접한 건 그보다 이른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첫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가곡을 연주했다. 지금 생각하면 형편없는 솜씨였지만 그 소리가 벼락치듯 몸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본래 집안에 음악하던 사람이 있었나요.

“우리 엄마 아빠가 뽕짝을 뒤집어지게 잘 불렀어요. 그럼 음악하는 거지 뭐 딴게 있겠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전문음악가로 갈 형편이 안됐으니까. 과거 전통으로부터 단절돼 있었잖아요.”

임동창은 졸업과 동시에 우연히 술집에서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꽹과리를 치는 이광수를 ‘운명’처럼 만났다. 그전에도 국악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KBS 1FM에서 오후 5시면 흘러나오던 국악방송을 테이프로 녹음해 벽면 가득히 쌓아뒀지만 우선 ‘양놈’들이 어떤 체계로 곡을 쓰는지 확실히 파자는 생각으로 서양음악에 매진했던 것.

―자신의 음악을 클래식과 팝으로 나눈다면 어느쪽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다 좋아하고 다 하고 있고 다 해야 한다고 봐요. 이제는 반만 해서는 안되니까….”

―임동창 하면 흔히 피아노라는 서양악기를 가지고 국악을 현대적으로 연주하는 퓨전음악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판소리나 가야금이 갖고 있는 소리를 어떻게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겠소. 판소리나 가야금이 갖고 있는 혼, 그 본질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거죠. 그걸 알면 피아노를 가지고 ‘놀’ 수가 있다는 겁니다. 조상이 해온 ‘짓거리’를 모르고 어떻게 제대로 놀 수 있겠어요.”

이번 TV강의는 정악인 ‘수제천’을 새롭게 해체조합한 2시간짜리 피아노 솔로앨범을 준비하던중 갑자기 맡게 됐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뭡니까.

“‘음악은 말’이라는 겁니다. 음악은 말에 자연스럽게 리듬을 실은 것일 뿐이예요. 헌데 서양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은 우리 가요나 가곡은 말에 자연스럽게 리듬이 실려있지 않잖아요. 전통민요나 가락을 들어보면 우리에게 자연스런 리듬이 어떤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어요.”

―음악을 안했으면 뭘 했을 것 같아요.

“우리의 아름다운 옛 말을 찾아다녔을 거요. 얄리 얄리 얄라셩, 달아 높이곰 돋아샤 같은 말 있잖아요. 모두 그 자체로 완벽한 음악이 되는 말이예요.”

임동창은 경기 안성 산구석에 틀어박혀 산다. 다시 결혼할 생각은 없다. 세상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감동의 선율을 찾느라 하루해가 짧다. 아마도 임동창이 꿈꾸고 있는 것은 지금은 글로만 전해지는 ‘정읍사’나 ‘청산별곡’을 지은 그런 대중음악가인지도 모른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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