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포터/영화]웃음의 미학 선사하는 '쉘위댄스'

  • 입력 2000년 5월 23일 10시 43분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dance?)>는 아주 평범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동안 일상을 소재로 발표됐던 많은 영화들중 하나일 뿐이다. 더구나 인생의 '위기'를 만날 수 있는 '중년의 평범한 샐러리맨'은 소재의 참신성에 있어서도 '위기'를 제공하는 대상이다.

자칫 상투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 영화를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볼륨댄스와 결합시켜 독특한 감각으로 이끌어냈다.

볼륨댄스는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대중화가 된 춤의 장르는 아니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캬바레 춤'으로 알려져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주인공 스기야마 쇼헤이(야쿠쇼 코지 분)는 그의 성실한 캐릭터에 맞게 볼륨댄스도 성실하게 배워나감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춤에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빨려들게 한다.

그런데 그의 이 고지식하고 성실한 캐릭터는 관객이 춤을 감상하다가도 매번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스기야마는 어떤 과장된 몸짓도 없이 그저 춤에 몰두할 뿐이다. 인위적으로 웃음을 유발케하는 다른 의도나 장치도 없다. 마치 영화속 찰리 채플린처럼 오직 자기 일에 충실하려고 하는 행동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춤을 추다가 파트너의 발을 계속 밟고, 너무 열심히 연습하다가 힘이 빠져 미끄러지고, 댄스경연대회에서는 딸의 목소리에 놀라 토요코의 의상을 밟아 찢는다.

배우 야쿠쇼 코지는 스기야마 쇼헤이란 인물을 '최선을 다해 춤춘다'란 목표만을 가지고 연기해 나간다. 그가 잔재주를 부리거나 손쉬운 웃음에 유혹당했다면 이 영화는 3류로 전락했을 것이다.

이 배우는 개그와 희극 연기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개그가 찰나적인 웃음 때문에 인물의 일관성을 잃는다면, 희극 연기는 인물의 일관된 모습 때문에 웃음이 유발된다. 그는 희극 연기는 과장이 아닌 자연스러움임을 보여준다.

물론 아오키(회사 동료)나 토요코, 핫도리 등은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있다. 조연인물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아오키는 걸음걸이, 특히 코너를 돌 때의 몸짓과 걸음을 강조함으로써 재미를 준다. 첫 장면에서 그의 걸음걸이를 보고 무심코 웃었다면 스기야마가 댄스교습소를 찾아갔을 때 아오키의 놀랄만한 변신을 확인하면서 당황할 것이다. 그는 가발과 몸짓의 변화로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한다. 그의 과장 뒤에 가려진 초라함이 연민과 함께 웃음을 유발한다. 토요코나 다나카는 춤을 추기엔 비대해 보인다. 특히 토요코는 볼륨댄스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토요코와 다나카에게는 사연이 있다. 토요코는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다나카는 여성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춤을 선택한 것이다. 이들의 독특한 행동을 보면서 웃던 관객들은 희극과 비극의 경계선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웃음이 차갑지 않고 따뜻해옴을 느끼는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헐리우드 영화의 영웅주의를 볼까 식상해 할 필요는 없다. 송별회 파티장은 마이와 스기야마만의 독무대가 아니라 함께 인생이란 무대에서 공연했던 배우들의 잔치이다. 각 인물들은 끝까지 자기 캐릭터를 잃지 않고 춤으로 보답한다.

'함께 춤출까요?'란 제목에 맞게 춤과 인생을 뛰어난 앙상블로 연기해낸 배우들에게 웃음의 미학을 한수 배운 느낌이다.

홍란주 <동아닷컴 인터넷기자> wildran@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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