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창」의 쓸쓸함 「안나 카레니나」,국내 곧 개봉

  • 입력 1997년 6월 27일 07시 18분


첫 눈에 서로에게서 헤어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배우자를 가진 몸.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안나와 그를 뒤따르는 브론스키. 배경에 흐르는 적막한 현악의 합주는 「비창교향곡」의 1악장이다. 계속되는 사건과 이어지는 마음의 갈등. 결국 브론스키는 자살을 시도하고 비탄으로 얼룩진 「비창」4악장이 스크린 주변을 수놓는다. 대문호 톨스토이의 역작 「안나 카레니나」, 대작곡가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최후의 명곡 「비창」. 러시아의 두 걸작이 영화를 매개로 만났다. 버나드 로즈 감독의 신작 「안나 카레니나」. 소피 마르소가 주인공이고 「패트리어트 게임」의 숀 빈이 상대역.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못지않게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가 음악감독으로 활약한 사운드 트랙 또한 관심을 모은다. 솔티는 영화의 극적인 순간 구석구석에서 사무치도록 쓸쓸한 「비창」의 선율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적 유서」로 불리는 교향곡 6번 「비창」. 이 곡이 처음 연주된 9일뒤 실제로 차이코프스키는 숨을 거두었다. 의사는 콜레라 진단을 내렸지만, 오늘날은 「자기독살」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라진 시절을 회고하는 듯한 서글픔과 「재앙의 느낌」이 뒤섞이는 1악장, 자연의 위로와 같은 민속춤곡의 2악장, 불운을 비웃듯 폭발적인 힘을 보이는 3악장, 눈물이 쏟아지듯 제지할 수 없는 아픔의 4악장…. 어떤 이들은 작품에서 작곡가의 개인적 슬픔을 찾아내기도 하고 농노제 등 사회적 모순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던 제정 러시아의 세기말적 상황을 짚어내기도 한다. 「비창」에 대한 솔티와 로즈의 평가는 공통된다. 『비창교향곡은 바로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이다』(솔티)『비창교향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유서와 같은 곡으로 가장 어둡고 철두철미하게 감동적이다』(로즈) 사운드트랙에는 「비창」 이외에도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예프등 러시아 거장들의 작품이 곳곳에 수놓아져 있다. 살아있는 인물로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러시아인은 솔티의 지휘 아래 연주를 맡은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뿐. 제작 및 주요 배역 출연은 전원 외국인이 담당했다. 그럼에도 영화 「안나 카레니나」는 최고 경지의 문학과 음악의 만남을 통해 문화대국 러시아의 역량을 소리 높여 웅변하고 있다. 〈유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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