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섭의 시네월드]「세 친구」

  • 입력 1996년 10월 30일 20시 46분


신인은 특별한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다. 기성의 거장에 비해 출발선부터 온갖 장애물을 헤쳐가야 하는 것이 그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신인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는 역사가 한세기에 불과한 젊은 「미완의 예술」이어서 신인감독의 도발은 거장의 심오한 깊이보다도 귀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성감독 임순례의 데뷔작 「세친구」는 작가주의와 독립영화를 표방해 영화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러나 작가주의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 한 영화감독이 자신의 평생을 바쳐 이룩해 가는 것이다. 노년의 영화감독이 그의 마지막 피사체에 대한 응시를 거둘 때 사람들은 『그는 일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스타일로 추구한 작가였다』고 평가하게 된다. 이같은 다소간의 과장을 젊은 감독의 객기 정도로 이해한다면 「세친구」는 나름대로의 형식미와 치열함을 갖춘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에 낙방하고 그렇다고 사회로 진출하지도 못한 세 동창생의 방황과 절망을 그리면서 감독은 통속적인 영화의 낯간지러운 드라마 기법들을 애써 외면하고 두발은 땅에, 그리고 시선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본다. 특히 한낮 담벼락에 기대선 채 세 친구가 모여있는 모습은 고작 하품을 하거나 팔짱을 낀 정도지만 관객의 의표를 찌를 정도로 단순미속에 비수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세친구」는 감독 자신이 부정하고 공격하는 한국사회의 「경직성」 만큼이나 여유가 없고 일방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관객에게 객관적인 자세를 권하는 촬영기법인 「롱테이크」는 너무나 교과서적인 사실주의 미학으로 사용돼 드라마의 공간인 90년대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다. 임순례 감독은 이제 겨우 첫번째 장편영화를 끝냈다. 작은 이야기를 기본적인 테크닉으로 깔끔하게 완성한 것이다. 제발 과장하기 좋아하는 일부 평론가들의 치켜세움에 현혹되지 않기 바란다. 왜냐하면 두번째 영화는 더 어렵고 세번째 영화는 또 더 어렵기 때문이다. 강 한 섭(서울예전 영화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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