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행정망 장애, ‘쪼개기 발주-업체 잦은 교체’도 원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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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전산망 먹통 사태]
“대기업 진입막고 中企에 나눠 맡겨…전체 시스템 관리할 업체 없어”

정부가 전 국민의 일상을 마비시킨 ‘행정망 먹통 사태’를 56시간이나 걸려 겨우 정상화시킬 정도로 문제 파악 및 대응이 늦었던 것은 정부의 ‘쪼개기 발주’ 탓이라는 지적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2002년 11월 전자정부 시스템 출범 후 전산망을 구축하거나 수리할 때 여러 업체로 나눠서 발주하고, 또 계약 만료 후 새 업체로 관행처럼 교체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공무원 행정전산망 ‘새올’ 및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24’를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네트워크 유지보수 사업을 수주한 적이 있는 IT 업계 임원 A 씨는 “정부는 입찰을 낼 때 전체 사업을 통합해 한 업체를 선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업으로 쪼개 입찰을 낸다”고 말했다. 그 경우 여러 기업이 각각 사업을 수주하게 된다. 이번과 같은 먹통 사태가 일어나면 정부로선 어느 업체에 연락해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지 알기 힘들어진다.

A 씨는 또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정부는 거의 예외없이 새 사업자를 선정한다”며 “그러다 보니 기존 시스템을 더 고도화하시키고 확장시키는 게 아니라 새 사업자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쪼개기 입찰에 나서는 것은 공공 시스템 입찰제도가 대기업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게 근본 원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2013년 대기업이 공공 소프트웨어(SW) 서비스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산 5조 원이 넘는 기업의 공공 서비스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대기업의 독점을 막고 실력 있는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취지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시스템을 구축하다 보니 통합된 전체를 통틀어 맡을 수 있는 역량 있는 곳이 드물었다. 결국 정부는 각 사업을 쪼개 발주할 수밖에 없게 됐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새 사업자를 관행처럼 구하는 것은 감사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년 연속으로 동일한 사업자를 선정해도 ‘특혜’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에 가급적 1년 계약이 끝나면 다른 사업자를 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만약 정부가 다시 공공 시스템 입찰제도를 수정해 대기업의 참여를 열어 놓는다고 해도 대기업이 정부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다. 정보통신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공공 서비스가 워낙 저가로 발주되다 보니 대기업 차원에서 수익성이 낮아 참여하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박병호 KAIST 경영공학과 교수는 “공공 수주에 참여하는 기업 대부분이 인건비 정도만 받고, 추후 큰 입찰에 경력쌓기용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 보니 실력 있는 인력이 참여하거나 좀 더 나은 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it업계#행정망 장애#쪼개기 발주#업체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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