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예금 80%가 ‘비대면’… 고령층엔 ‘그림의 떡’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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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비대면으로 영업비 절감”
노년층 선호 ‘대면 상품’은 축소
ATM-CD도 8년새 41% 줄여
금융사기 피해 60세 이상이 최다

#1. 올해 7월 A 씨(81)는 길을 걷다가 4%대 예금상품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보고 집 근처 은행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가 창구에서 가입할 수 있는 상품 중 가장 이자율이 높은 건 연 3.5%의 12개월 만기 정기예금이었다. A 씨는 “비대면으로 가입하면 더 높은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지만 휴대전화로 상품을 찾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그냥 영업점에서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2. 최근 은퇴한 60대 B 씨는 귀농에 관심이 있어 대형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귀농 박람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곳에서 6000만 원을 투자하면 인삼 재배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 월 100만 원의 확정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한 영농조합의 홍보를 들었다. 3년 후에 투자금을 전액 반환받을 수 있고 보증금융사의 지급보증서도 발급해준다는 말에 B 씨는 6000만 원을 투자했지만 조합의 연락 두절로 은퇴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은행권에서 4%를 넘어서는 고금리 예금 상품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고령층 이용 비중이 높은 대면 금융 상품과 자동화 기기는 줄고 있다. 이들을 노린 불법 금융사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 4%대 예금 80%가 비대면 전용


2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최고 4% 이상 금리를 제공하는 은행권의 주요 예금상품 20개 중 16개가 인터넷뱅킹, 스마트뱅킹, 전화 등 비대면 방식으로만 가입할 수 있다. 이자율 상위 10개로 범위를 좁혀 봐도 영업점에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은 4개에 불과하다.

은행들이 고금리 상품에 비대면 가입 조건을 내거는 이유는 영업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영업점을 통하지 않으면 원가 자체가 낮아져 소비자들에게 추가 금리 혜택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경쟁적으로 출시된 고금리 상품의 만기가 돌아오자 금융권 전반이 예금 금리를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기기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60대 이상 적금 가입자 중 대면 가입의 비율은 80.9%에 달했다.

고령층의 이용량이 많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현금자동지급기(CD)도 줄고 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ATM과 CD 수는 2015년 2만7736개에서 올해 6월 1만6387개로 8년 새 41% 가까이 줄었다. 반면 모바일뱅킹 이용자 중 60대 이상은 여전히 10.3%에 불과하다.

● 불법 금융사기 노출된 고령층


디지털 금융에서 소외된 고령층 금융소비자들은 불법 금융사기에도 노출돼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중 유사수신 민원의 60세 이상 비중은 36.5%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에서도 46.7%를 차지했다.

불법 유사수신 업체는 노후에 관심이 많은 고령층에 ‘은퇴 박람회’ 명목으로 접근하거나 조합 사업을 가장해 ‘평생 연금’처럼 배당금을 지급한다고 현혹한다. 금감원은 “가족이나 지인이 원금 보장, 모집 수당 등을 미끼로 투자를 권유하는 경우에도 불법 유사수신 사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장 투자설명회를 통해 전도 유망한 사업이라고 광고하더라도 사업 내용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고령층의 금융사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경로당, 노인복지관 및 노인 대상 행사를 활용해 피해 예방 홍보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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