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안 보이는 유적지도 찾아내는 ‘라이다’… 고고학 문턱 낮아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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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파장 이용한 ‘공간측정 기술’
하늘에서 초당 수백만 번 레이저 쏴 10년 걸리는 조사를 1시간에 끝내
비행체 수준 높아지며 활용도 커져… 새로운 유적지 500곳 발견하기도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대 고고학과 연구팀은 공간 측정 기술 ‘라이다(LiDAR)’로 측정한 스페인 북서부 갈라시아 지역에 
위치한 5∼7세기 중세시대 거대 요새를 발견했다(위쪽 사진). 독일 고고학연구소 연구팀 또한 라이다를 활용해 스페인이 남미 대륙을
 정복하기 전인 500년부터 1400년 사이 아마존에 존재했던 초기 도시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해 5월 보고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대·네이처 제공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대 고고학과 연구팀은 공간 측정 기술 ‘라이다(LiDAR)’로 측정한 스페인 북서부 갈라시아 지역에 위치한 5∼7세기 중세시대 거대 요새를 발견했다(위쪽 사진). 독일 고고학연구소 연구팀 또한 라이다를 활용해 스페인이 남미 대륙을 정복하기 전인 500년부터 1400년 사이 아마존에 존재했던 초기 도시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해 5월 보고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대·네이처 제공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대 고고학과 연구팀은 스페인 북서부 갈라시아 지역에서 5∼7세기 중세시대 거대 요새를 발견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요새는 해발 400m에 축구장 14개 면적인 10ha(헥타르) 규모에 달했다. 1.2km에 달하는 성벽, 30개의 석탑 등으로 구성됐다. 과거 요새의 일부 건축물이 발견된 적이 있었으나 당시 고고학자들은 15∼17세기 지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고고학자들이 연대 측정을 실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요새가 빽빽한 초목에 숨겨져 있어 착오를 일으켰다.

무려 10세기나 차이가 났던 스페인 중세시대 요새 구축 시기를 바로잡은 것은 공간 측정 기술인 ‘라이다(LiDAR)’ 덕분이다. 자율주행 차량에 주로 쓰이는 라이다는 고고학 분야에서도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라이다를 활용하면 기존 10년이 걸리는 고고학 관련 조사를 1시간 내에 할 수 있다. 2010년대 라이다가 본격 도입된 이후 500개 이상의 새로운 고고학 유적지가 발굴된 것으로 추산된다.

● 눈금 촘촘한 자로 길이 재는 것과 같은 기술
고고학 분야의 혁명이라 불리는 라이다는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발사하는 펄스 레이저로 공간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펄스 레이저는 물체에 부딪힌 뒤 되돌아오는데, 빛의 속력에 측정 시간을 곱하면 왕복 거리가 산출된다. 이를 반복 측정해 주변 물체들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데이터를 함께 곁들이면 3차원(3D) 지도가 만들어진다.

라이다는 사물 탐지에 쓰이는 ‘레이더’와 원리는 동일하다. 그러나 라이다가 사용하는 레이저의 파장은 0.5μ(미크론·1μ은 100만분의 1m)으로 레이더가 사용하는 라디오파의 파장보다 짧다. 폭과 높낮이 정보까지 측정하는 세밀한 탐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더 촘촘한 눈금을 가진 자로 길이를 정확히 재는 것과 같다.

고고학자들은 라이다를 비행기나 헬리콥터, 드론 등에 달아 사용한다. 하늘에서 레이저를 쏘는 것이다. 다만 라이다로도 수풀이 우거진 지역은 탐사가 쉽지는 않다. 잎사귀가 레이저를 반사해 버린다. 따라서 초당 최대 수백만 번의 레이저를 쏜다. 결국 그중 일부 레이저가 잎사귀를 뚫고 지면에 닿았다가 반사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런 방법으로 육안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고고학 유적지를 찾아낸다. 기존에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처럼 페도라를 눌러쓰고 낡은 크로스백을 멘 채 밀림을 누비던 것보다 빠르고 저렴한 방식이다.

스페인 연구팀 역시 이 방식을 통해 요새의 벽이 3세기 로마의 성벽과 비슷한 형태라는 것을 밝혔다. 요새의 벽은 2.5∼4.5m 두께로 이중벽돌 구조로 지어졌으며 내부는 흙과 자갈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벽이 울창한 초목으로 덮여 있음에도 라이다로 내외부 구조를 완벽하게 판별했다”고 말했다.

● 쓰임새 커진 데다 고고학 문턱까지 낮춰
라이다 기술은 1960년대에 개발됐다. 1970년대 유럽 고고학자들이 라이다를 탐사에 활용하려 했지만 당시는 비행체의 기술 수준이 낮았다. 라이다 자체도 레이저 발사가 초당 5000회 정도에 불과해 활용도가 떨어졌다. 2010년대 들어 기술 수준이 높아지며 라이다는 고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실험도구가 됐다.

매해 걸쭉한 성과도 나오고 있다. 독일 고고학연구소 연구팀은 스페인이 남미 대륙을 정복하기 전인 500년부터 1400년 사이 아마존에 존재했던 초기 도시를 발견하고 지난해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보고했다. 볼리비아 목소스평원의 2만 ha에 이르는 지역을 라이다로 분석한 결과로 1년 중 몇 달은 침수되는 아마존 저지대에서 과거 도시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고고학 분야 라이다의 활용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침식이나 지진 등 자연적 영향 외에도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 전쟁 등의 영향으로 고고학 유적지들이 빠르게 소실되고 있어서다. 고고학자들은 “라이다가 사라져 가는 고고학 유적지에 대한 기록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라이다는 시민 과학 확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이 활발한 탐사 활동을 보이며 미국 고고학연구소, 영국 고고학협회 등에 매년 논문을 발표한다. 영국의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데이비드 래틀리지 씨는 자체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찾아낸 유적지들을 보고하고 있다. 래틀리지 씨는 “라이다가 고고학의 문턱을 낮췄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라이다#고고학#공간측정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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