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많은 것만으로 큰 위험…‘군중 난기류’ 이해하기[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일 0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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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딥다이브는 ‘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깊이 들여보겠습니다. 사실 이번 주제는 딥다이브가 다루던 글로벌 경제와는 별 관련이 없고 물리학에 가까운 얘기인데요. 이걸 살펴봐야 할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혹시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 닥치면 살아남는 법을 알기 위해, ②두번 다시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예방법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여 그 밀도가 임계치를 넘어가면 엄청난 힘의 파동이 생겨 사고가 날 수 있다. 게티이미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그 밀도가 임계치를 넘어가면 엄청난 힘의 파동이 생겨 사고가 날 수 있다. 게티이미지
많은 사람은 왜 치명적인가
종교, 스포츠, 축제. 가장 많은 군중을 끌어들이는 세 가지죠. 압사사고도 보통 이와 관련된 행사에서 일어나곤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수십, 수백명이 깔려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게 하는 핵심 원인은 도대체 뭘까요. 보통은 그 원인을 인간의 실수, 즉 심리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흥분하거나 술에 취한 몇 명이 바보 같은 짓을 했거나, 나쁜 의도를 가지고 밀치기 시작한 게 원인이라는 식이죠. 지금 이태원 참사를 두고도 같은 지적(몇 명이 ‘밀어! 밀어!’라며 밀기 시작했다)이 나오는데요.

그런데 이런 사고는 예전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축적된 연구들도 상당합니다. 주로 심리학이 아니라 역학(Mechanics; 힘에 따라 물체의 위치와 속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탐구하는 과학 영역)연구들이죠. 그 연구들의 결론을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이겁니다. ‘누군가의 나쁜 의도가 없어도 일이 끔찍하게 잘못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개념이 ‘군중 난기류(crowd turbulence)’, 다른 말로는 ‘군중 지진(crowd earthquake)’입니다.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모습.(압사사고와는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게티이미지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모습.(압사사고와는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게티이미지
1㎡당 6명이 임계치
2006년 이슬람 성지인 메카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해 363명의 순례자가 사망했습니다. 당시 메카 지역엔 200만명이 넘게 몰렸다는데요. 메카 순례자들은 ‘미나’라는 곳에서 돌을 던지는 의식을 합니다. 악마를 쫓아낸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성지순례의 절정이죠. 이걸 일몰 전에 하기 위해 순례자들이 서둘렀고요.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대형참사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해 가장 안타까운 점은 2015년에도 같은 곳에서 2400여 명의 순례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이 사고는 CCTV로 모두 촬영이 됐는데요. 그 45분짜리 영상을 독일의 물리학자 더크 헬빙(Dirk Helbing)이 분석했습니다(‘군중재해의 역학:실증적 연구’). 영상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위치와 속도를 추적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만들어 연구한 건데요. 그 결과 아주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인구 밀도가 ‘평방미터 당 6명’이란 임계치에 도달하면 ‘군중 난기류’ 현상이 생긴다는 걸 밝혀낸 겁니다. 그 정도 밀집 수준에선 신체 간 물리적 접촉이 너무 강해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난기류가 급증하면서 무지막지한 압력 파동이 사람들을 덮친다는 설명이죠. 지진이 발생할 때 생기는 ‘충격파’와 비슷해서 ‘군중 지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2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 ‘러브 퍼레이드’ 축제 현장. 높은 벽에 둘러싸인 경사로에 사람이 밀집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일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양옆 비상계단으로 올라가 탈출하고 있다. 유튜브 다큐멘터리 화면캡처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는 계속됩니다. 2010년 7월 독일 뒤스부르크 음악 축제인 ‘러브 퍼레이드’에서 대형 압사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러브 퍼레이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DJ들이 총출동하는 최대 규모의 테크노댄스 음악 축제였는데요(이 사건으로 영구 중단됨). 경찰 추산 40만명(언론 보도에서는 100만명)이 축제장에 몰렸죠. 울타리로 둘러싸인 행사장은 사실상 출입구가 하나뿐이었습니다. 축제장소로 들어가거나 나가려는 사람들은 높다란 벽으로 둘러싸인 경사로와 폭 20m짜리 터널을 지나야 했는데요. 이 경사로와 터널에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차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떠밀리며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맙니다. 결국 21명이 사망하고 65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망 원인은 압축성 질식, 즉 너무 많은 압박을 받아 숨을 쉬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사건 이후 많은 독일 언론은 일부 참가자들이 비상탈출로인 좁은 계단으로 돌진하는 바람에 뒤엉켜서 사고가 커졌다고 보도했는데요. 더크 헬빙 교수가 당시 영상들을 분석 결과는 달랐습니다. 메카 사고와 똑같이 군중 난기류가 원인으로 밝혀졌죠. 몇 명이 밀거나 우르르 몰려가서가 아니라, 사람이 말도 안 되게 많았던 것 자체가 문제였던 겁니다. 사실상 가만히 서 있던 사람들이 사망한 거죠.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보통 점점 더 가까워져서 빽빽하게 서게 되는데요. 이렇게 밀도가 높아지면 의도치 않게 서로 몸이 닿게 됩니다. 그 결과 한 사람의 힘이 옆 사람에게 전달되고요. 이렇게 힘이 합산돼 증폭되다 보면 일종의 상전이(물질 상태가 바뀌는 현상)처럼 갑자기 엄청난 힘의 파도(군중 난기류)를 일으키는 겁니다. 누가 일부러 막 밀지 않아도 말이죠. “아무도 무자비하게 행동하지 않는데도 어떻게 사람들이 죽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그것은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전달되는 힘일 뿐입니다.”(더크 헬빙 교수, 2012년 블룸버그 인터뷰)

특히 러브 퍼레이드 사고는 평평하지 않은 경사로였던 점, 일방통행이 아니라서 축제장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나오는 사람이 엉킨 점도 희생을 키운 이유로 분석됐습니다(이태원 참사와 비슷한 부분입니다).

임계치(평방미터 당 6명)를 넘어가는 밀도에서 군중은 거대한 유체 덩어리가 된다는 게 헬빙 교수 설명입니다. 그 속의 개별 인간의 몸은 시냇물 속 미세한 알갱이처럼 되고 말죠. 자갈이나 모래 같은. 누구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럼 그 임계치인지 아닌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 몸이 내 양쪽 어깨와 몸의 여러 곳에 닿고 있다고 느낀다면 평방미터 당 6명 이상인 거라고 합니다.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서 얼굴을 만질 수가 없다면? 위험한 밀도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출입구는 여러 개, 통행은 일방통행
군중 난기류가 치명적인 압사사고의 핵심 원인이라는 데는 이제 학계에선 이론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현실에 적용시키느냐인데요. 보통 이런 사고가 나면 모두들 ‘누구의 책임이냐’를 찾기에 급급합니다. 특히 무질서한 일부 군중을 비난하며 희생양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런 비난은 구조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군중 난기류는 일단 생기면 방법이 없습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난기류나 지진처럼 말이죠. 처음부터 생기지 않게 예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적절한 장소 선택과 준비가 정말 필요하고요. 무엇보다 밀도를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건 출입구를 여러 개 만들어 압력을 분산하는 거죠.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게 일방통행을 해야 하고요. 회전교차로에서 자동차가 들고 나기 쉬운 것처럼, 보행자들이 순환해서 통행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몰려드는 걸 막겠다며 길에 울타리를 세우는 건 좋지 않습니다. 장애물이 돼서 위험을 더 키우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을 멈추게 하는 것보다는 계속 통행하게 하는 게 훨씬 더 안전한 방법이죠.

콘서트 같은 행사장에서 카메라로 군중을 모니터링해서 위험신호를 감지해 경고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기술적으로야 얼마든지 가능한데요. 다만 개인정보 이슈가 있겠죠.

이 정도로 완벽하게 안전한 건축물이 있다니. 로마 콜로세움. 게티이미지
이 정도로 완벽하게 안전한 건축물이 있다니. 로마 콜로세움. 게티이미지
참고로 군중 역학적으로 아주 완벽하게 설계된 건축물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의 콜로세움인데요. 최대 7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76개의 번호가 매겨진 출입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들어갔던 문으로만 나올 수 있었죠. 콜로세움은 5분 이내에 전원이 대피할 수 있는 구조라는데요. 현대의 최신식 경기장도 그 정도 효율엔 도달하지 못합니다.

인파에 갇혔을 때 살아남으려면
만약 내가 엄청난 인파에 갇혀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군중행동 전문가인 메디 무자이드가 2019년 쓴 글 등을 참고해서 몇가지 팁을 공유합니다.

①위험 신호에 눈을 뜨고 탈출하라
‘사람이 많아서 불편해. 기분이 안 좋아’라고 느꼈나요? 그게 바로 위험하다는 신호입니다. 얼른 주위를 둘러보세요. 가장 붐비는 혼란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찾아야 합니다. 군중에 갇히면 앞에서 뭐가 벌어지는지 하나도 안 보입니다. 울타리를 오르거나 난간에 올라선다면 어디로 탈출할지를 빨리 알아낼 수 있습니다. 도망칠 수 있을 때 달아나세요.

②똑바로 서 있자
탈출하기에 너무 늦었다고요.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을 유지하고 똑바로 서있는 겁니다. 넘어지면 다시 못 일어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줄줄이 넘어지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방을 바닥에 두진 마세요. 바닥에 배낭 하나만 있어도 누군가가 넘어져 죽을 위험이 있는 장애물이 될 겁니다.

③숨 쉴 산소를 확보하라
산소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태원 사고 이후 뉴스에서도 보셨을 텐데요. 팔을 가슴 앞으로 들어 술 쉴 공간을 유지해야 합니다. 압사 사고의 원인은 질식이거든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비명을 지르지 말고 호흡을 조절하세요.

④흐름에 따라 이동하라
밀릴 때 그 압력에 저항해서 뒤로 밀지 마세요. 그냥 흐름에 휩쓸려 가세요. 옆사람을 밀면 그 힘이 증폭돼서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겁니다. 한번에 여러 사람이 밀면서 힘의 파도가 생기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위험한 군중 난기류입니다.

⑤벽에서는 멀리 떨어져라
흐름에 따르면 안 되는 유일한 경우가 있습니다. 올라갈 수 없는 벽 같은 장애물 바로 옆에 있는 경우입니다. 자칫 장벽에 갇힐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벽에서는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⑥서로 도와줘라
내내 물리학 얘기만 했는데, 심리학자 존 드루리의 연구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타적인 행동은 군중 속에서 전염성이 있다고 합니다(이기적인 행동도 마찬가지). 주변 사람을 도와주세요. 단결된 군중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태원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By.딥다이브

갑자기 생소한 물리학 얘기를 해서 당황하진 않으셨나요? 알아두시면 언젠간 도움이 될 거라고 보고 들여다 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나는 건 몇몇 사람 탓이기보다는 ‘군중 난기류’ 현상 때문입니다.
  • 임계치를 넘는 밀도로 사람이 밀집되면 의도치 않게 몸이 닿으면서 힘의 파동이 생깁니다. 그 결과 일부러 누가 밀지 않아도 압사사고가 발생합니다.
  • 군중 난기류는 예방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적절한 규모의 장소에서, 충분한 출입구를 확보하고, 일방통행해야 합니다.

*이 기사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 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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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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