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디폴트 위기…문제는 ‘불안심리’

  • 뉴시스
  • 입력 2022년 3월 16일 0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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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금융 시장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국내에도 연쇄적 영향을 줄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진단했다.

16일 시장에서는 미국 등 서방 국가의 금융제재로 러시아의 디폴트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채권 이자를 상환하더라도 루블화로 지급할 경우 기술적으로 디폴트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16일(현지시간) 달러 표시 국채 이자 1억2000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또 21일에는 7000억 달러, 28~29일에는 5억4000만 달러 등 이번 달에만 원금과 이자 7억3000만 달러를 상환해야 한다. 다음달 4일에는 20억 달러의 원금과 1억3000만 달러의 이자 상환을 앞두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16일 이자를 갚지 않더라도 곧바로 국가부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러시아 정부와 기업의 디폴트 적용 여부는 수주가 소요될 수 있고, 유예 기간도 통상 외화채는 15~30일, 루블화 국채는 10일이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올 1월 기준 6302억 달러로 세계 4위 규모다. 러시아의 유동외채는 지난해 3분기 말 782억3000만 달러로 외환보유액 보다 작기 때문에 지급 여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서방 국가의 금융제재로 자금이 묶여 있어 실제로 이자를 갚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러시아 재무부가 국채에 대한 이자를 제때 지급했으나 채권자들이 계좌에서 그 이자를 역외로 이체하거나 반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것이 디폴트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채권 및 법률 전문가들에게도 아직 불분명하다.

국제금융센터는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6302억 달러 가운데 서방 국가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퇴출로 실제 가용 규모는 300억 달러에 불과한 만큼 이자를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윤경 국금센터 자본시장부장은 “러시아 정부가 국채 이자를 상환하더라도 각종 제재로 인해 투자자들의 반출이 불가할 경우 기술적 디폴트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과거 1998년과 같이 러시아의 채무불이행이 재차 현실화되면 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러시아 정부가 달러와 유로로 발행한 외화 국채의 총 잔액은 약 396억 달러로 외국인이 약 51%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외화 발행 회사채 규모까지 합하면 2580억 달러에 육박한다. 러시아 루블화 국채는 1794억 달러로 이 중 외국인 투자금액이 290억 달러로 적지 않은 규모로 추정되고 있어 디폴트시 파장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주요 은행의 대러시아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1214억 달러다. 국가별로는 이탈리아 2.6%, 오스트리아 1.6%로 큰 편이지만 글로벌 전체로는 0.3%에 불과하다.

금융 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러시아가의 디폴트가 현실화 되더라도 1998년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 유예)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글로벌 금융 회사들이 러시아 채권 투자를 줄여온 만큼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당시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러시아 국채에 대규모 투자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은 러시아 국채 손실을 감당하지 못 하고 2000년 청산된 바 있다. LTCM은 대규모의 러시아 국채를 보유 하고 있어 매일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러시아 디폴트 리스크가 모라토리엄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며 “무엇보다 러시아 국채 등 자산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의 투자 포지션이 크지 않고 2014년 크림반도 사태를 계기로 주요 서방국가들이 대러시아 익스포저와 투자액을 줄이는 등 리스크 관리를 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디폴트 선언과 러시아 사태 장기화 등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급등) 리스크 현실화 등이 예상치 못한 신용 이벤트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러시아 디폴트에 따른 금융 손실이 유럽 은행은 물론 취약한 이머징 금융시장(신흥시장)으로 전이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998년 당시에는 정말로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지만 지금은 돈은 있지만 서방국가의 제재로 상환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 때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며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지속될수록 디폴트 이슈 이외 부분도 시장을 압박할 수 있는 만큼 경계심은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의 디폴트가 현실화 될 경우 단기외채 비중이 높고 최근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통화가치가 급락한 국가인 브라질, 칠레, 폴란드, 터키 등 국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다만 구조적 경상흑자국인 한국과 중국, 태국 등은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러시아의 디폴트 현실화시 국내 금융·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면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은은 국내 금융권의 러시아에 대한 익스포저가 매우 낮은 수준인 만큼 직접적인 영향은 없겠지만 미국, 유럽 등이 영향을 받게 되면 시장 불안 심리로 인해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 세계 은행권의 러시아 익스포저는 1490억 달러 규모이며 국내 금융회사의 대(對) 러시아 익스포져는 14억7000만 달러로 전체의 0.4%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은 관계자는 “러시아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만 달러화 표시 채권 이자 지급 이행을 안 하더라도 통상적으로 30일 간의 유예 기간을 두는 시간적인 부분도 있고, 이 이슈 자체가 이미 시장에 알려져 있어 당장 국가부도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국내 외국인 자금유출 등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다른 리스크와 맞물려 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는 있는데 익스포저가 높은 유럽과 미국이 타격을 입을 경우 투자 심리 하락으로 인한 연쇄적 파급효과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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